咸興差使 (함흥차사)

咸興差使(함흥차사)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거나 소식이 없음.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에 있을 때에, 태종이 보낸 차사를 혹은 죽이고 혹은 잡아 가두어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던 데서 유래한다.


이조 초 함흥으로 간 태조를 모셔 오기 위해서 보낸 使臣(사신). 1398년 (태조 7) 세자 芳碩(방석)이 왕자의 亂(난)으로 죽은 뒤 태조는 정치(政治)에 뜻이 없어 王位(왕위)를 定宗(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故鄕)인 함흥으로 갔다. 태종이 즉위하여 성석린(成石璘)을 보내어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北東(북동) 방면으로 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왕이 差使(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도 돌아오지 않아 이 때부터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차사를 모두 태조가 죽인 것이라 하나 문헌(文獻)에는 朴淳(박순)의 희생만이 알려져 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師父(사부) 無學大師(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했다.

[출전]
축수편(逐睡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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