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龐鬪智 (손방투지, sūnpángdòuzhì)

孫龐鬪智(손방투지)

孙庞斗智(sūn páng dòu zhì)


孫 손자 손 | 龐 어지러울 방 | 鬪 싸울 투 | 智 지혜 지 |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慧王)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 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는 위왕(威王)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354년에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341년에 위나라는 한(韓)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가 대군을 보냈을 때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방연이 제나라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馬陵)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손방투지는 재능이 비슷한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史記(사기):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관련 한자

참조어

圍魏救趙(위위구조) |


손빈, 방연, 사기, 사기:손자오기열전

孫矉, 龐涓, 史記, 史記:孫子吳起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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