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林七賢 (죽림칠현)

竹林七賢(죽림칠현)

竹 대 죽 | 林 수풀 림(임) | 七 일곱 칠 | 賢 어질 현 |

진나라 초기에 노자·장자의 허무의 사상을 숭상하여 대숲에 모여 청담을 일삼았던 일곱 명의 선비.


중국 위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을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였다. 그중 유명한 7인을 죽림칠현으로 부르는데 그들의 이름은 완적(阮籍)·혜강(嵆康)·산도(山濤)·향수(向秀)·유영(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 이다. 그들은 개인주의적·무정부주의적인 노장사상(老莊思想)을 신봉하여 지배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소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기 위하여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들은 위(魏)나라를 멸망시키고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씨의 일족에 의해 회유되어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혜강은 끝까지 사마씨의 회유를 뿌리치다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 루쉰[魯迅]은 그들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矯)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들이 그룹을 형성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집권자에게 죽음을 당하거나, 타협하여 관계로 돌아가거나 하여 모두 흩어졌지만, 그 풍부한 일화는 그 후 《세설신어(世說新語)》 등 인물평론이나 회화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中流砥柱 (중류지주, zhōngliúDǐzhù)

中流砥柱(중류지주)

中流砥柱(zhōngliúDǐzhù)

中 가운데 중 | 流 흐를 류 | 砥 숫돌 지 | 柱 기둥 주 |


'황허강[黃河] 중류의 지주산'이라는 뜻으로,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서 유래되었다.

竹頭木屑 (죽두목설)

竹頭木屑(죽두목설)

竹片木屑(zhúpiàn mùxiè)

竹 대 죽 | 頭 머리 두 | 木 나무 목 | 屑 가루 설, 달갑게 여길 설 |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라는 뜻으로, 쓸모 없다고 생각한 것도 소홀(疏忽)히 하지 않으면 후(後)에 긴히 쓰인다는 말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파양(-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명제(明帝) 때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등을 지냈다. 군사 방면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모든 일에서 항상 몸소 힘써 행하여 모범을 보였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장에 직접 가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때 도간은 공사에 쓰다 남은 나무 부스러기와 대나무 조각을 모두 거두어 간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木屑及竹頭悉令擧掌之]. 사람들은 쓸모없는 것들은 왜 모아 두라고 하는지 의아해 하였다.

해가 바뀌어 새해를 축하하는 모임이 열렸는데 눈이 쌓였다가 녹아서 청사 앞의 길이 진창이 되었다. 도간은 보관해 두었던 톱밥과 나무 부스러기 등으로 진창이 된 길을 덮게 하였다.

또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하여 병선(兵船)을 급히 만들었는데, 널빤지는 많았지만 대나무못이 부족하였다. 도간이 이 사실을 알고 보관해 두었던 대나무 조각들을 환온에게 보내 대나무못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도간이 일을 처리하는 데 치밀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고 한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도간전과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정사(政事)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죽두목설은 대나무 조각과 나무 부스러기처럼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나중에 긴히 활용하는 일 또는 하찮은 것이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 | 세설신어(世說新語) 정사(政事)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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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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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진징사도잠(晋徵士陶潛)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酒囊飯袋 (주낭반대)

酒囊飯袋(주낭반대)

酒 술 주 | 囊 주머니 낭 | 飯 밥 반 | 袋 자루 대 |

송(宋)나라 증조(曾 )의 유설(類說)에 나오는 이야기. 중국의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마은(馬殷)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목공일을 하였으나, 군에 입대한 후에는 손유(孫儒)라는 장수를 따라 양주(揚州)로 들어갔다. 그후, 유건봉(劉建峰)이라는 장군을 수행하여 담주(潭州)로 옮겨갔다. 훗날 유건종이 부하에게 피살되자, 마은은 곧 우두머리로 추대되었다. 그후 당(唐)나라 때에 마은은 담주 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서기 907년, 대장군 주온(朱溫)이 스스로 황제라 칭하게 되자, 마은은 다시 초왕(楚王)으로 책봉되었다. 마은의 영향으로 그의 친척들도 모두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마은은 향락 만을 알았지 문무(文武) 따위는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술 주머니에 밥 자루[時謂之酒囊飯袋]라고 하며 얕보았다.

酒囊飯袋란 먹고 마실줄만 알지 일할 줄을 모르는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衆口難防 (중구난방)

衆口難防(중구난방)

衆 무리 중 | 口 입 구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防 막을 방 |

뭇사람의 말을 이루 다 막기가 어렵다는 말로 많은 사람이 마구 떠들어대는 소리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周(주)나라때 이야기다. 勵王(여왕)은 국정을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적발해서 죽였다. 그래서 밀고제도가 자리잡고 거미줄같이 쳐진 정보망때문에 백성들은 공포정치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

여왕은 득의만면해서 그렇게 말했다. 중신 召公(소공)은 기가 막혔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물이 막히면 언젠가 둑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인명이 상하게 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소공의 간곡한 충언을 여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공이 우려했던 대로 백성들은 언제까지나 가만있지는 않았다. 백성들은 마침내 들고 일어났다. 여왕이 달아난 곳에서 죽을때까지 주나라에서는 14년간 共和政(공화정)이 실시되었다. 신하들이 상의해서 정치를 했기에 공화라 했던 것이다.

다른 이야기로는 춘추시대 때의 것이 있다. 성을 쌓는 일을 독려하기 위해 나와 있던 춘추시대 송나라의 華元(화원)이란 벼슬아치가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일꾼들이 일제히 그를 비웃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여왕의 故事(고사)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입을 막기 어렵다[衆口難防]』고 하고는 작업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酒果脯醯 (주과포혜)

酒果脯醯(주과포혜)

酒 술 주 | 果 실과 과, 열매 과, 강신제 관 | 脯 포 포, 회식할 보 | 醯 식혜 혜 |

술ㆍ과실(果實)ㆍ포(脯)ㆍ식혜(食醯) 따위로 간략하게 차린 제물(祭物)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酒果(주과) | 酒果脯(주과포) |

晝耕夜讀 (주경야독)

晝耕夜讀(주경야독)

晝 낮 주 | 耕 밭 갈 경 | 夜 밤 야, 고을 이름 액 | 讀 읽을 독, 구절 두 |

낮에는 농사(農事) 짓고 밤에는 공부(工夫)한다는 뜻으로, 바쁜 틈을 타서 어렵게 공부(工夫)함을 이르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耕讀(경독) | 晝耕夜讀手不釋卷(주경야독수불석권) | 晝耕夜誦(주경야송) | 晴耕雨讀(청경우독) | 凿壁偷光(záobìtōuguāng, 착벽투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