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流砥柱 (중류지주, zhōngliúDǐzhù)

中流砥柱(중류지주)

中流砥柱(zhōngliúDǐzhù)

中 가운데 중 | 流 흐를 류 | 砥 숫돌 지 | 柱 기둥 주 |


'황허강[黃河] 중류의 지주산'이라는 뜻으로, 난세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인물 또는 그러한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서 유래되었다.


지주중류(砥柱中流)라고도 한다. 지주(砥柱)는 황허강 중류에 있는 산 이름이다. 《수경주(水經注)》에 따르면,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할 때 산언덕이 물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산의 좌우를 파냈다. 이렇게 해서 강물은 산의 양쪽으로 갈려 흘러가게 되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물 속에 기둥처럼 솟아 있었으므로 지주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수하에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라는 3명의 용사가 있었다. 이들은 경공의 충복이었으나 조정의 기강에 해를 끼칠 정도로 오만무례하게 행동하였다. 그래서 재상인 안영은 이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2개의 복숭아를 놓고 3명 가운데 공을 더 많이 세운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 하였다.

이때 고야자는 예전에 경공을 모시고 황허강을 건널 때 괴물 같은 자라가 나타나 수레를 끄는 말을 물고 지주산이 있는 중류로 도망친(以入砥柱之中流) 일을 거론하면서, 자신이 쫓아가 괴물을 죽이고 말을 되찾아 왔노라고 공을 내세웠다. 이 고사는 《안자춘추》에 실려 있으며,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2개의 복숭아로 3명의 용사를 죽이다)라는 고사성어의 전거(典據)가 된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류지주는 황허강의 격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솟아 있는 지주산처럼 난세나 역경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잃지 않는 의연한 인물 또는 그러한 행동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라고 하는데, 이 고사성어에서 따온 명칭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砥柱中流(지주중류) |


참조어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



晏子春秋, 안자춘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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