掘墓鞭屍(굴묘편시)
掘墓鞭尸(juémùbiānshī)
堀 굴 굴 | 墓 무덤 묘 | 鞭 채찍 편 | 屍 주검 시 |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나왔는데, 그는 초(禁)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요 충신이었던 오사(伍奢)의 아들이었다. 평왕이 건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의 참언으로 태자를 죽이려 하고 오사를 감옥에 가두었다. 비무기는 평왕을 부추겨 오사를 인질로 삼아 그의 큰아들 오상(伍尙)과 오자서를 불러들여 죽임으로써 후환을 없애고자 하였다. 오상은 이것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부름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으나 오자서는 복수를 기약하며 오나라로 망명하였다.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를 거쳐 오(吳)나라로 간 오자서는 합려(闔閭)를 보좌하여 오나라를 강국으로 키웠다. BC 506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함락시킨 뒤, 오자서는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을 잡으려 하였으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평왕은 생전에 이미 그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자서는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에 채찍질을 300번 함으로써 복수하였는데, 굴묘편시(掘墓鞭屍)는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이 소문을 듣고, "그대의 그러한 복수방법은 지나친 게 아닌가…"라고 책하였다. 그러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하였는데, 여기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史記(사기)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 伍子胥(오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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