巢毁卵破 (소훼난파)

巢毁卵破(소훼난파)

巢毁卵破[cháohuǐluǎnpò]

巢 새집 소 | 毁 헐 훼 | 卵 알 난(란) | 破 깨뜨릴 파, 무너질 피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뜻으로, 국가(國家)나 사회(社會) 또는 조직(組織)이나 집단(集團)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被害)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


후한서(後漢書) 정공순(鄭孔荀)열전의 이야기다.

동한(東漢)말기, 공자의 20세손인 공융(孔融)은 한나라 헌제(獻帝) 밑에서 벼슬을 지냈다. 공융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조조(曹操)의 야심을 간파하고 그를 멀리하였다. 때문에 조조는 공융에게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유비와 손권을 공격하려는 조조의 계획을 반대했던 공융은, 그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던 한 대부의 모략으로 조조에게 체포되었다.

공융의 7세 된 딸과 9세 된 아들은, 아버지가 잡혀 가던 순간 묵묵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도망하라고 했지만, 공융의 딸은 매우 침착하게 '새집이 부서졌는데 알이 어찌 깨지지 않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라고 말했다. 공융의 딸은 조조에게 붙잡혀 와서도 죽은 뒤에 혼령이나마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형의 집행을 기다렸다.

巢毁卵破 이란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정공순(鄭孔荀)열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鸡飞蛋打[jīfēidàndǎ] 닭은 날아가고 달걀도 깨지다. 양쪽으로 다 망치다 |

반의어·상대어

完好无损[wánhǎowúsǔn] 완전하고 손상이 없다. |

小貪大失 (소탐대실)

小貪大失(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내어 큰 것을 잃음.

to covet a little but lose a lot; to seek small gains but incur big losses


贪小失大(tānxiǎoshīdà)

小積大成 (소적대성)

小積大成(소적대성)

小 적을 소 | 積 쌓을 적 | 大 큰 대 | 成 이룰 성

작은 것이 쌓이고 쌓여서 큰 것으로 됨.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티끌 모아 태산.
¶ 실도랑이 모여 대동강이 된다.

少壯不努力老大徒傷悲 (소장불노력노대도상비)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 부질없이 슬퍼질 따름이다

A lazy youth, lousy age.


출전

심약(沈約) 장가행(長歌行) |


관련 한자어

참조어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상심과 슬픔뿐 어쩔 도리 없다네. [심약(沈約) 장가행(長歌行)] |

吏情更覺滄洲遠 老大徒悲未拂衣(이정갱각창주원 노대도비미불의) 벼슬하는 뜻이 신선이 사는 창주와 멀어짐을 새삼 깨닫나니, 늙어서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함을 못내 설워하노라. [두보(杜甫) 곡강대주(曲江對酒)] |

旣壯不努力 白首而無知(기장불노력 백수이무지) 젊어서 노력하지 않았더니, 백발 되어서는 아는 것이 없도다. [변계량(卞季良) 감흥(感興)]


중요도·활용도

|

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소소아독혼혼)

속인소소 아독혼혼 (俗人昭昭 我獨昏昏)

세상 사람들 모두 똑똑한데 나만 홀로 어리석다. 노자의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5.html

宋襄之仁 (송양지인)

宋襄之仁(송양지인)

송나라 양공(襄公)의 어짊이란 말로 쓸데없는 인정이나 필요없는 동정을 비유하여 쓴다.

率獸食人 (솔수식인)

率獸食人(솔수식인)

率 거느릴 솔 | 獸 짐승 수 | 食 먹을 식 | 人 사람 인 |

率獸食人이란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의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이 칼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양혜왕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말을 계속하였다.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이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不免於率獸而食人] 백성의 부모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束手無策 (속수무책, shùshǒuwúcè)

束手無策(속수무책)

束手无策(shùshǒuwúcè)

어찌할 방도가 없음.

be at one’s wits end

孫龐鬪智 (손방투지, sūnpángdòuzhì)

孫龐鬪智(손방투지)

孙庞斗智(sūn páng dòu zhì)


孫 손자 손 | 龐 어지러울 방 | 鬪 싸울 투 | 智 지혜 지 |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慧王)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 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는 위왕(威王)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354년에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341년에 위나라는 한(韓)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가 대군을 보냈을 때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방연이 제나라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馬陵)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손방투지는 재능이 비슷한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史記(사기):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관련 한자

참조어

圍魏救趙(위위구조) |


손빈, 방연, 사기, 사기:손자오기열전

孫矉, 龐涓, 史記, 史記:孫子吳起列傳

笑裏藏刀 (소리장도, xiàolǐcángdāo)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笑 웃을 소 | 裏 속 리 | 藏 감출 장 | 刀 칼 도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웃음 속에 칼을 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무명의 육손(陸遜)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李義府)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였다(故時人言義府笑中有刀). 이 고사는 《구당서(舊唐書)》의 〈이의부전〉에 실려 있다.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고사에서 유래된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의미이다.

소리장도의 또 다른 예는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이다.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한자

유사어

口蜜腹劍(구밀복검) | 包藏禍心(포장화심) |

참조어

臥薪嘗膽(와신상담) | 西施嚬目(서시빈목)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少 적을 소, 젊을 소 | 年 해 년(연), 아첨할 녕(영) | 易 쉬울 이, 바꿀 역 | 老 늙을 로(노)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成 이룰 성 |

소년(少年)은 늙기 쉬우나 학문(學問)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송(宋)나라 대유학자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學問)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 불가경)]


출전

주자(朱子)의 주문공전집(朱文公文集)

蕭規曹隨 (소규조수)

蕭規曹隨(소규조수)

蕭 쓸쓸할 소, 맑은대쑥 소 | 規 법 규 | 曹 무리 조, 성씨 조 | 隨 따를 수, 게으를 타 |

'소하(蕭何:?∼BC 193)가 제정한 법규를 조참(曹參:?∼BC 190)이 따른다'라는 뜻으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쓰던 제도(制度)를 그대로 따르거나 이어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나라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한신(韓信:?∼BC 196), 장량(張良:?∼BC 168), 조참과 함께 한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으며,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 셴양(咸陽)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楊雄:BC 53∼AD 18)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편(淵騫篇)에는 "소하가 만들어 정한 법규를 조참이 그대로 따랐다[蕭也規 曹也隨]"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전

법언(法言)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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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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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送舊迎新 (송구영신, sòngjiùyíngxīn)

送舊迎新 (송구영신)

送 보낼 송 | 舊 예 구, 옛 구 | 迎 맞을 영 | 新 새 신

送旧迎新 (sòngjiùyíngxīn)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으로, ①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 ②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함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나온 말로 관가에서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 했던 데서 유래(由來)


유의어

送迎(송영) |


절기

昭君落雁 (소군낙안)

昭君落雁(소군낙안)

zhāo jūn luò yàn
ciu1 gwan1 lok6 ngaan6

Wang Zhaojun entice birds fal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