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化無窮(조화무궁)
造 지을 조 | 化 될 화, 잘못 와 | 無 없을 무 | 窮 다할 궁,궁할 궁 |
온 세상 만물을 낳고 자라게 하고 죽게 하는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음.
調虎離山 (조호이산, diàohǔlíshān)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三十六計(삼십육계) 攻戰計(공전계) 제15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을 떠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곳에서 벗어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킨 다음에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에 속한다. 상대방을 유인하여 본거지로부터 끌어내서 싸우라는 것이다. 산중(山中)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가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산중을 떠나게 하여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요새에 틀어박혀 굳게 지키기만 하는 적을 밖으로 끌어내어 공략하는 데 사용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에 대한 설명은 "하늘이 적을 곤란하게 만들 때를 기다리고, 인위적으로 적을 유인하여 그 행로를 어렵게 만든다(待天以困之, 用人以誘之, 往蹇來連)"는 것이다. 往蹇來連는 往蹇來返라고도 한다. 자연적인 여러 가지 조건이나 상황들이 적에게 불리할 때를 기다리고, 위장 전술을 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근거지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세한 점을 잃게 한 뒤에 제압하여 승리를 취한다는 말이다.
《손자(孫子)》에서도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下策)이라 하고, 실패하기 쉽다고 하였다. 적이 이미 유리한 지세(地勢)를 차지하고 있고, 응전할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에는 아군의 작은 이익을 버림으로써 적을 유인하여 견고한 방어지에서 나오도록 한 뒤에 공략하여야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의미는 조호이산과 같다.
'조호이산'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꼽는 것이 바로 한나라의 名將, 韓信(한신)의 예이다.
초에 붙은 趙(조)를 치기 위해 한신이 조나라를 향했을 때의 일이다. 조나라를 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20만 조군에 비해, 한신은 약 2만의 군사만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투항병들을 많이 받아들여 군사가 많았으나, 항상 유방이 군사들을 빼내갔기 때문이었다.
조나라로 향한 한신은 '정형구'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 정형구는 길이 굉장히 좁아서 사람이 2열로 지나가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사를 가지고 이 곳을 지나갈 때 공격을 받는다면 패배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군은 정형구를 지나오는 한신군을 공격하지 않았다. 병사의 수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형구를 지나 병사를 정렬한 한신은 밤중에 별동대를 시켜 비밀리에 임무를 주어 보내고, 다음날 남은 병사들을 조나라 성 앞에 흐르고 있는 강물을 등지고 포진했다(유명한 '背水의 진'이다). 이에 조나라 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배수진은 그야말로 병법의 금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한신을 '병법도 모르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한신을 풋내기라고 생각한 조군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다. '지키는 입장의 유리함'을 버리고 성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전투가 벌어지자 갑자기 조군의 뒤에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한신이 미리 보내둔 별동대가 조군이 성 밖으로 나간 틈을 타서 성을 장악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을 등에 진 병사들의 필사의 분전 앞에 조군은 무너져 버리고 만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声东击西 |
병법, 36계, 三十六計, 삼십육계, 三十六計:攻戰計, 삼십육계:공전계
鳥足之血 (조족지혈)
鳥足之血(조족지혈)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足 발 족, 지나칠 주 | 之 갈 지 | 血 피 혈 |
새발의 피. ①극히 적은 분량(分量)을 말함 ②아주 적어서 비교(比較)가 안됨 ③물건(物件)이 아주 작은 것을 기리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滄海一粟(창해일속) | 蹄涔(제잠)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鳥 새 조, 땅 이름 작, 섬 도 | 足 발 족, 지나칠 주 | 之 갈 지 | 血 피 혈 |
새발의 피. ①극히 적은 분량(分量)을 말함 ②아주 적어서 비교(比較)가 안됨 ③물건(物件)이 아주 작은 것을 기리킴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滄海一滴(창해일적) | 滄海一粟(창해일속) | 蹄涔(제잠) | 大海一滴(대해일적) | 大海一粟(대해일속) | 九牛一毛(구우일모) |
朝薺暮鹽 (조제모염)
朝薺暮鹽(조제모염)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薺 냉이 제 | 暮 저물 모 | 鹽 소금 염 |
아침에는 고사리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씹는다는 뜻으로, 몹시 곤궁(困窮)한 생활(生活)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전
송궁문(送窮文)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薺 냉이 제 | 暮 저물 모 | 鹽 소금 염 |
아침에는 고사리를 먹고 저녁에는 소금을 씹는다는 뜻으로, 몹시 곤궁(困窮)한 생활(生活)을 이르는 말
당(唐)나라 한유(漢愈)의 문장 가운데 송궁문(送窮文)이라는 글이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어려움을 주는 다섯 가지의 일들을 귀신으로 묘사하고, 이것들을 쫓아버리려는 자신의 마음를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유는 이 글에서 의인화된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하고 자신으로부터 떠나줄 것을 간청하였다. 가난 귀신이라는 궁귀는 한참 있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와 선생님이 함께 살아온지 사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 저는 선생님을 어리석게 여기지 않았으며, 선생님께서 남쪽으로 귀양갔을 때, 저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여 여러 귀신들이 속이고 능멸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간 공부하는 동안 아침에는 냉이나물을 먹고 저녁에는 소금으로 반찬하며[大學四年 朝薺暮鹽], 오직 저만이 선생님을 보살펴 주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반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전
송궁문(送窮文)
助長 (조장)
助長(조장)
助 도울 조 | 長 길 장 |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출전
孟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拔苗助長(발묘조장) | 助長(조장) |
助 도울 조 | 長 길 장 |
孟子 '공손추(公孫丑)' 상편에는 공손추와 맹자의 문답이 실려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하고 나서, 순리(順理)와 의기(義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송(宋)나라의 한 농부의 조급한 행동을 예로 들었다.
그 농부는 자기가 심은 곡식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싹들은 뽑아 올렸으나, 그 싹들은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잘 되게 하려고 했던 농부의 행동은 오히려 무익(無益)의 정도를 넘어서 해악(害惡)이 되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은 사람을 드물다[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여 내버려두는 사람은 김을 매지 않는 자이고, 자라도록 돕는 사람[助之長者]은 싹을 뽑아 올리는 사람이니, 이는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을 해치는 것이다.
助長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도와서 성장시키다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모두 망쳐버리다라는 부정적 의미가 훨씬 강하다.
출전
孟子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拔苗助長(발묘조장) | 助長(조장) |
礎潤張傘 (초윤장산)
礎潤張傘(초윤장산)
礎 주춧돌 초 | 潤 젖을 윤 | 張 펼 장 | 傘 우산 산 |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펼쳐라. 주춧돌이 젖어 있다면 결국은 비가 올 징조고, 그렇다면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상대의 작은 언행, 주변의 사소한 조짐에서 결과를 예측하라는 의미.
출전
손자병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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礎 주춧돌 초 | 潤 젖을 윤 | 張 펼 장 | 傘 우산 산 |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우산을 펼쳐라. 주춧돌이 젖어 있다면 결국은 비가 올 징조고, 그렇다면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상대의 작은 언행, 주변의 사소한 조짐에서 결과를 예측하라는 의미.
출전
손자병법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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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聖棄智民利百倍 (절성기지민리백배)
절성기지 민리백배 (絶聖棄智 民利百倍)
성인이 되기를 끊고 지혜롭기를 버려라. 그러면 백성들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9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4.html
성인이 되기를 끊고 지혜롭기를 버려라. 그러면 백성들의 이로움이 백배가 될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19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4.html
朝三暮四 (조삼모사, zhāosānmùsì)
朝三暮四(조삼모사)
朝三暮四(zhāosānmùsì)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三 석 삼 | 暮 저물 모 | 四 넉 사 |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
이는 '열자(列子) : 황제편(黄帝篇)'과 '莊子(장자) : 齊物論(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원숭이들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받거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받거나 총 7개를 받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도 4개를 먼저 받는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상대에게 설복당하고, 저공은 같은 개수를 주고도 원숭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삼모사는 눈앞의 이익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列子(열자):黃帝(황제) | 莊子(장자):齊物論(제물론) |
관련 한자어
동의어
朝三(조삼) |
유의어
朝秦暮楚(조진모초,zhāoqínmùchǔ) ① 아침에는 진(秦)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楚)나라를 섬기다. ② 줏대 없이 이쪽 저쪽에 빌붙다. 이랬다저랬다하다. 변덕스럽다. |
翻云覆雨(번운부우,fānyúnfùyǔ) ① 손바닥을 위로 하면 구름이 되고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으면 비가 된다. ② 이랬다저랬다하다. 농간을 부리다. |
반의어
始终不渝(시종불유,shǐzhōngbùyú)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
朝三暮四(zhāosānmùsì)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三 석 삼 | 暮 저물 모 | 四 넉 사 |
① 조삼모사.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내더니,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는 말에는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②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하다. 똑똑한 사람은 간사한 꾀를 잘 써도,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을 잘 분별하지 못하다. ③ 변덕스러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변덕이 심하여 믿을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
이는 '열자(列子) : 황제편(黄帝篇)'과 '莊子(장자) : 齊物論(제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원숭이들은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받거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받거나 총 7개를 받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도 4개를 먼저 받는다는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상대에게 설복당하고, 저공은 같은 개수를 주고도 원숭이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조삼모사는 눈앞의 이익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거나 남을 농락하여 자기의 사기나 협잡술 속에 빠뜨리는 행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유래
列子(열자):黃帝(황제) | 莊子(장자):齊物論(제물론) |
관련 한자어
동의어
朝三(조삼) |
유의어
朝秦暮楚(조진모초,zhāoqínmùchǔ) ① 아침에는 진(秦)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초(楚)나라를 섬기다. ② 줏대 없이 이쪽 저쪽에 빌붙다. 이랬다저랬다하다. 변덕스럽다. |
翻云覆雨(번운부우,fānyúnfùyǔ) ① 손바닥을 위로 하면 구름이 되고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으면 비가 된다. ② 이랬다저랬다하다. 농간을 부리다. |
반의어
始终不渝(시종불유,shǐzhōngbùyú)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
朝不慮夕 (조불려석)
朝不慮夕(조불려석)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慮 생각할 려(여), 사실할 록(녹)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하여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삼국시대 촉(蜀)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위(魏)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 벼슬을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이에 이밀은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거나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간곡하게 사양하였다.
[인용]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不謀夕(조불모석) |
참조어
日薄西山(일박서산)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不 아닐 불, 아닐 부 | 慮 생각할 려(여), 사실할 록(녹)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형세(形勢)가 절박(切迫)하여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곧, 당장의 걱정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음.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재가하여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는 삼국시대 촉(蜀)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촉나라가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위(魏)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통일한 진(晉)나라 무제(武帝)는 그에게 태자세마(太子洗馬) 벼슬을 내려 조정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이에 이밀은 "다만 조모 유씨가 해가 서산에 가까워져 희미해지는 것처럼 숨이 곧 끊어질 듯하니, 목숨이 위태로워 아침에 저녁 일을 알 수 없습니다(但以劉日薄西山, 氣息奄奄, 人命危淺, 朝不慮夕). 신은 조모가 없었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는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이니, 조모와 손자 두 사람이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까닭에 구차스럽게 폐하거나 멀리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간곡하게 사양하였다.
[인용]
이밀(李密), 진정표(陳情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不謀夕(조불모석) |
참조어
日薄西山(일박서산) '해가 서산에 가까워지다'라는 뜻으로, 늙어서 죽을 때가 가까워지거나 사물이 쇠망기에 접어든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인 양웅(揚雄)이 지은 '반이소(反離騷)'에서 유래. 이밀(李密)이 지은 '진정표(陳情表)'에도 사용. |
從道不從君 (종도부종군)
從道不從君(종도부종군)
도를 따라야지 임금을 따르면 안된다
[출전]
「순자」 자도(子道):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순자」 신도(臣道): 傳曰, 從道不從君. 此之謂也.
도를 따라야지 임금을 따르면 안된다
[출전]
「순자」 자도(子道): 從道不從君, 從義不從父, 人之大行也.
「순자」 신도(臣道): 傳曰, 從道不從君. 此之謂也.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聞 들을 문 | 道 길 도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死 죽을 사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矣 어조사 의 |
아침에 천하(天下)가 올바른 정도(正道)로 행(行)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사람이 참된 이치(理致)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恨)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며, 짧은 인생(人生)을 값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意味)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의 대의(大意)는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죽음을 앞 둔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육체의 생명이 다함보다도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큼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는 공자 자신의 절실한 도의 추구라는 소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魏)나라의 하안(何晏)과 왕숙(王肅)은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의 탄식으로 해석하였다. 즉 인의(仁義)의 도덕이 올바르게 행하여지는 세상의 재현을 기대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위의 상황이 투영된 협의의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하여 주자(朱子)는, “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順)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의 토로로 해석하였다. 즉 공자는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학자 유보남(劉寶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어정의(論語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를 듣고도 갑자기 죽지 않고, 곧 습관에 따라 읊어서 장차 덕성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만일 불행하게도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면, 비록 이를 중도에 폐할지라도 그 듣는 것이 없음에 현명함이 멀고 심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朝聞夕死(조문석사) |
朝 아침 조, 고을 이름 주 | 聞 들을 문 | 道 길 도 | 夕 저녁 석, 한 움큼 사 | 死 죽을 사 | 可 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 | 矣 어조사 의 |
아침에 천하(天下)가 올바른 정도(正道)로 행(行)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으로, 사람이 참된 이치(理致)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恨)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며, 짧은 인생(人生)을 값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意味)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의 대의(大意)는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죽음을 앞 둔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육체의 생명이 다함보다도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큼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는 공자 자신의 절실한 도의 추구라는 소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魏)나라의 하안(何晏)과 왕숙(王肅)은 “아침에 온 세상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의 탄식으로 해석하였다. 즉 인의(仁義)의 도덕이 올바르게 행하여지는 세상의 재현을 기대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위의 상황이 투영된 협의의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하여 주자(朱子)는, “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順)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구도(求道)에 대한 열정의 토로로 해석하였다. 즉 공자는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청(淸)나라의 학자 유보남(劉寶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어정의(論語正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도를 듣고도 갑자기 죽지 않고, 곧 습관에 따라 읊어서 장차 덕성의 도움이 되고자 한다. 만일 불행하게도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면, 비록 이를 중도에 폐할지라도 그 듣는 것이 없음에 현명함이 멀고 심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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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朝聞夕死(조문석사) |
存亡之秋 (존망지추)
存亡之秋(존망지추)
存 있을 존 | 亡 망할 망, 없을 무 | 之 갈 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존속(存續)하느냐 멸망(滅亡)하느냐의 중대한 때. 절박한 위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秋(가을)는 수확기라는 뜻에서 중요한 때를 가리킨다.
a crisis ((pl. crises)); a critical moment.
《문선(文選)》에 실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나온 말.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로 蜀漢(촉한)의 재상이 된 諸葛亮(제갈량)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잘것 없던 촉한을 일으켜 세워 魏(위) 吳(오)와 鼎立(정립)하는 삼국시대를 만들어낸다.
세월이 흘러 유비가 63세로 죽고 태자 劉禪(유선)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자질이 부족한데다 관우와 장비도 이미 죽은 촉한의 운명은 이제 제갈량의 두 어깨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後主(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前出師表(전출사표)」다. 이 출사표는 제갈량이 그의 충성심을 토로한 명문장인데 그 첫대목은 이렇게 되어있다.
『先帝(선제․유비)께서는 한실(漢室) 부흥의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아직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우리 益州(익주․촉한을 가리킴)는 피폐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 此誠危急 存亡之秋也。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그러나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결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해 다시 원정길에 올랐으나 五丈原(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촉한은 그 뒤 몇년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存亡之機(존망지기) | 危急存亡之秋(위급존망지추) |
存 있을 존 | 亡 망할 망, 없을 무 | 之 갈 지 | 秋 가을 추, 밀치 추 |
존속(存續)하느냐 멸망(滅亡)하느냐의 중대한 때. 절박한 위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秋(가을)는 수확기라는 뜻에서 중요한 때를 가리킨다.
a crisis ((pl. crises)); a critical moment.
《문선(文選)》에 실린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나온 말.
劉備(유비)의 三顧草廬(삼고초려)로 蜀漢(촉한)의 재상이 된 諸葛亮(제갈량)은 비상한 능력을 발휘해 보잘것 없던 촉한을 일으켜 세워 魏(위) 吳(오)와 鼎立(정립)하는 삼국시대를 만들어낸다.
세월이 흘러 유비가 63세로 죽고 태자 劉禪(유선)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유선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자질이 부족한데다 관우와 장비도 이미 죽은 촉한의 운명은 이제 제갈량의 두 어깨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제갈량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섰다. 출정에 앞서 그는 後主(후주) 유선에게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저 유명한 「前出師表(전출사표)」다. 이 출사표는 제갈량이 그의 충성심을 토로한 명문장인데 그 첫대목은 이렇게 되어있다.
『先帝(선제․유비)께서는 한실(漢室) 부흥의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아직 그 반도 이루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뉘었고 우리 益州(익주․촉한을 가리킴)는 피폐해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시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先帝創業未半 而中道崩 今天下三分 益州罷 此誠危急 存亡之秋也。선제창업미반 이중도붕조 금천하삼분 익주파폐 차성위급존망지추야]』
그러나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결전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다음해 다시 원정길에 올랐으나 五丈原(오장원)의 진중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촉한은 그 뒤 몇년을 버티다가 견디지 못하고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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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유의어
存亡之機(존망지기) | 危急存亡之秋(위급존망지추) |
朝令暮改 (조령모개, zhāolìngmùgǎi)
朝令暮改(조령모개)
朝令暮改(zhāolìngmùgǎi)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令 하여금 령(영) | 暮 저물 모 | 改 고칠 개 |
아침에 명령(命令)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①법령(法令)의 개정(改定)이 너무 빈번(頻煩)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租稅)를 부과(賦課)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to issue an order in the morning and change it in the evening—to make changes in policy at will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夕改(조령석개,zhāolìngxīgǎi) | 朝改暮變(조개모변) | 作心三日(작심삼일) |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
朝令暮改(zhāolìngmùgǎi)
朝 아침 조,고을 이름 주 | 令 하여금 령(영) | 暮 저물 모 | 改 고칠 개 |
아침에 명령(命令)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으로, ①법령(法令)의 개정(改定)이 너무 빈번(頻煩)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租稅)를 부과(賦課)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to issue an order in the morning and change it in the evening—to make changes in policy at will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 〈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朝夕變改(조석변개) | 朝變夕改(조변석개) | 朝變暮改(조변모개) | 朝令夕改(조령석개,zhāolìngxīgǎi) | 朝改暮變(조개모변) | 作心三日(작심삼일) |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
终南捷徑 (종남첩경, Zhōngnánjiéjìng)
终南捷徑(종남첩경)
终南捷径(Zhōngnánjiéjìng)
终 마칠 종 | 南 남녘 남, 나무 나 | 捷 빠를 첩, 이길 첩, 꽂을 삽 | 徑 지름길 경, 길 경 |
종남산(終南山)이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쉽게 벼슬하는 길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 노장용(盧藏用)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시(詩)와 부(賦)에 뛰어났다. 그는 진사에 합격했지만,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조정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곧 당시의 수도인 장안(長安) 근처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대하여 명리에 초연하고 학문이 높은 고매한 선비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그러한 은자를 초빙하여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노장용은 은자로 행세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었다.
그 무렵 천대산(天臺山)에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도사(道士)가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은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한번은 사마승정이 또 황제의 부름을 받아 하산하였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장안에 며칠 머문 뒤 종남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여 성 밖으로 나왔다가 종남산을 가리키며 "참으로 훌륭한 정취가 있는 산입니다[此中大有嘉處]"라고 말하였다.
노장용의 말에는 종남산도 은거하기에 좋은 곳인데, 멀리 있는 천대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사마승정은 차갑게 웃으며 "내가 보기에는 종남산은 단지 관리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오[以僕觀之, 仕宦捷徑耳]"라고 대꾸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장용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이 고사는 《신당서(新唐書)》의 노장용전(盧藏用傳)과 도교 서적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종남첩경은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노장용의 예에서 보듯이,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신당서·노장용전(新唐書·盧藏用傳) |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終南捷徑(종남첩경) | 終南捷經(종남첩경) |
终南捷径(Zhōngnánjiéjìng)
终 마칠 종 | 南 남녘 남, 나무 나 | 捷 빠를 첩, 이길 첩, 꽂을 삽 | 徑 지름길 경, 길 경 |
종남산(終南山)이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쉽게 벼슬하는 길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 노장용(盧藏用)이라는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두뇌가 명석하고, 시(詩)와 부(賦)에 뛰어났다. 그는 진사에 합격했지만,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관직을 받지 못하였다. 그는 조정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곧 당시의 수도인 장안(長安) 근처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숨어 사는 은자(隱者)에 대하여 명리에 초연하고 학문이 높은 고매한 선비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으며, 조정에서는 그러한 은자를 초빙하여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노장용은 은자로 행세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뜻한 바대로 조정의 고위 관리로 등용되었다.
그 무렵 천대산(天臺山)에 사마승정(司馬承禎)이라는 도사(道士)가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은자로 명성이 높았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등용하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한번은 사마승정이 또 황제의 부름을 받아 하산하였다가 관직을 사양하고 장안에 며칠 머문 뒤 종남산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노장용이 그를 배웅하여 성 밖으로 나왔다가 종남산을 가리키며 "참으로 훌륭한 정취가 있는 산입니다[此中大有嘉處]"라고 말하였다.
노장용의 말에는 종남산도 은거하기에 좋은 곳인데, 멀리 있는 천대산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느냐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사마승정은 차갑게 웃으며 "내가 보기에는 종남산은 단지 관리가 되는 지름길일 뿐이오[以僕觀之, 仕宦捷徑耳]"라고 대꾸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장용은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이 고사는 《신당서(新唐書)》의 노장용전(盧藏用傳)과 도교 서적인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등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종남첩경은 출세의 지름길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노장용의 예에서 보듯이,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신당서·노장용전(新唐書·盧藏用傳) | 역세진선체도통감(曆世眞仙體道通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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糟糠之妻 (조강지처)
糟糠之妻(조강지처)
糟糠之妻(zāokāngzhīqī)
糟 지게미 조 | 糠 겨 강 | 之 갈 지 | 妻 아내 처 |
지게미와 겨를 먹고 함께 고생한 아내라는 뜻란 뜻으로, 곤궁(困窮)할 때부터 간고(艱苦)를 함께 겪은 본처(本妻)를 흔히 일컬음
중국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관리로서 뇌물을 받은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임용하는 관리들은 모두 宋弘(송홍)과 같이 淸廉潔白(청렴결백)한 신하들이었다. 온후하고 강직한 송홍(宋弘)은 건무(建武) 2년에 대사공(大司空)에 임명되었다.
어느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신하(臣下)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호양공주는 송홍을 칭찬(稱讚)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德行)과 재능을 따를 만한 신하(臣下)가 없습니다."
그러자 광무제는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조처해 보겠습니다."하고 약속했다.
그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그러자 송홍은 지체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조강지처는 광무제가 송홍의 갸륵한 뜻을 알아채고 누님에게 '마음을 달리먹으라'고 말하였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
관련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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糟糠(조강) |
糟糠之妻(zāokāngzhīqī)
糟 지게미 조 | 糠 겨 강 | 之 갈 지 | 妻 아내 처 |
지게미와 겨를 먹고 함께 고생한 아내라는 뜻란 뜻으로, 곤궁(困窮)할 때부터 간고(艱苦)를 함께 겪은 본처(本妻)를 흔히 일컬음
중국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는 관리로서 뇌물을 받은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임용하는 관리들은 모두 宋弘(송홍)과 같이 淸廉潔白(청렴결백)한 신하들이었다. 온후하고 강직한 송홍(宋弘)은 건무(建武) 2년에 대사공(大司空)에 임명되었다.
어느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님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신하(臣下)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랬더니 호양공주는 송홍을 칭찬(稱讚)했다.
"송공의 위엄 있는 자태와 덕행(德行)과 재능을 따를 만한 신하(臣下)가 없습니다."
그러자 광무제는 "알았습니다. 어떻게든 조처해 보겠습니다."하고 약속했다.
그후 광무제는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무제가 송홍에게 물었다.
"속담에 귀해지면 사귐을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
그러자 송홍은 지체없이 말했다. "아닙니다. 신은 가난하고 비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쫓아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之友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조강지처는 광무제가 송홍의 갸륵한 뜻을 알아채고 누님에게 '마음을 달리먹으라'고 말하였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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糟糠(조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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