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聖代 (태평성대)

太平聖代(태평성대)

太 클 태 | 平 평평할 평, 다스릴 편 | 聖 성인 성 | 代 대신할 대

태평스런 시절.


관련 한자어

유의어

堯舜之節(요순지절) | 道不拾遺(도불습유) | 鼓腹擊壤(고복격양) | 康衢煙月(강구연월) |

泰然自若 (태연자약)

泰然自若(태연자약)

泰然自若(tàiránzìruò)

泰 클 태 | 然 그럴 연, 불탈 연 | 自 스스로 자 | 若 같을 약, 반야 야 |

마음에 충동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스러운 것

Behave with perfect composure; be self-possessed.


관련 한자어

유의어

言笑自若 언소자약 | 談笑自若 담소자약 |

泰山壓卵 (태산압란)

泰山壓卵(태산압란)

泰 클 태 | 山 뫼 산 | 壓 누를 압, 싫어할 염, 숙일 엽, 누를 녑(엽) | 卵 알 란(난) |

큰 산이 알을 누른다는 뜻으로, 큰 위엄(威嚴)으로 여지없이 누르는 것의 비유(比喩ㆍ譬喩)①큰 위력(威力)으로 내리 누름 ②아주 손쉬운 것. 중국의 진(晉)나라 때 손혜(孫惠)의 고사(故事)에서 유래.


진(晉)나라 때, 손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조부와 부친은 모두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관리를 지냈다. 당시 진나라는 각지역 황족들의 다툼으로 몹시 혼란한 와중에 있었다.

손혜는 제왕(齊王) 경의 모사(謀士)로 있으면서 조왕(趙王) 윤(倫)을 토벌하는 일 등에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제왕이 차츰 교만하고 참람하게 행동하는 데 실망하여 병을 핑계로 떠났다. 손혜는 은거하던 중에 동해왕(東海王) 월(越)이 하비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남악일사(南嶽逸士) 진비(秦秘)라는 가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손혜는 이 글에서 "하물며 순리를 따라 역리를 토벌하고, 정의로움으로 사악함을 정벌하는 것이니, 이는 오획 같은 장사에게 얼음을 깨뜨리게 하고, 맹분(孟賁)과 하육(夏育) 같은 장사에게 썩은 나무를 뽑아내게 하며, 맹수에게 여우를 잡아먹게 하며, 태산으로 달걀을 누르게 하며, 불타는 들판에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아서 맞설 수 없는 일입니다[況履順討逆, 執正伐邪, 是烏獲携氷, 賁育拉朽, 猛獸呑狐, 泰山壓卵, 因風燎原, 未足方也]"라고 하면서 동해왕의 거병에 동조하였다.

동해왕은 이 글을 읽고 손혜를 기용하여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삼았다. 이 고사는 《진서(晉書)》의 〈손혜열전(孫惠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태산압란은 태산처럼 큰 산이 아주 조그만 달걀을 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세력으로 미약한 세력을 억누르는 일이나 그러한 경우처럼 매우 쉬운 일, 또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압도적인 우세 등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진서(晉書) 손혜전(孫惠傳)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排山壓卵(배산압란) | 泰山壓卵(태산압란) |

泰山不讓土塊 (태산불양토괴)

泰山不讓土塊(태산불양토괴)

泰 클 태 | 山 뫼 산 | 不 아닐 부, 아닐 불 | 讓 사양할 양 | 土 흙 토, 뿌리 두, 쓰레기 차 | 塊 덩어리 괴 |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용을 강조할 때 사용.


출전

文章軌範(문장궤범)

泰山不讓土塊,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태산불양토괴, 고능성기대. 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
큰 산은 작은 흙과 돌멩이 하나도 가리지 않고, 큰 바다는 가늘게 흐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泰山北斗 (태산북두)

泰山北斗(태산북두)

泰山北斗(tàishānběidǒu)

泰 클 태 | 山 뫼 산 | 北 북녘 북, 달아날 배 | 斗 말 두, 싸울 두, 싸울 투, 싸울 각 |

중국(中國) 제일(第一)의 명산인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이라는 뜻으로, ①학문(學問)ㆍ예술(藝術) 분야(分野)의 대가(大家) ②태산(泰山)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듯이, 남에게 존경(尊敬)받는 뛰어난 존재(存在).

Mount talisman and the northern star - person of distinction; abbreviation as 泰斗.


명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사람인 한유(韓愈)는 두 살에 고아(孤兒)가 되었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25세에는 진사(進士)가 되었고, 차츰 벼슬이 올라 드디어 경조윤(京兆尹) 겸 어사대부(御史大夫)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죽은 뒤 조정에서는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증(贈)하고, 시호(諡號)를 문(文)이라 했다. 한유는 벼슬살이를 할 때에 궁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폐단을 상소하여 황제(皇帝)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는데, '논불골표(論佛骨表)'라 하여 황제(皇帝)가 부처의 유골을 영접하여 궁중에 삼 일간이나 머물게 한 후, 여러 절에 보낸 일에 대해 간단한 글이 유명하다. 한유는 이 글에서 불교는 사교이므로 불골 같은 것은 수화(水火)에 던져버려야 한다고 통렬히 간했기 때문에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기도 했다. 한유는 글의 모범을 선진(先秦)에 구하고, 육조(六朝) 이래의 사륙(四六)변려의 숙폐(宿弊)를 타파하려 했다.

그 때문에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에는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글을 가지고 모든 학자들의 도사(導師)가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 그 학문(學問)이 점점 융성하여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를 우러러 보는 것 같이 존경했다."고 기록되어 있음.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출전: 당서(唐書)


관련 인물

한유(韓愈, 768~824)


관련 한자어

유의어

泰斗(태두) | 山斗(산두) |

太剛則折 (태강즉절)

太剛則折(태강즉절)

太 클 태 | 剛 굳셀 강 | 則 법칙 칙, 곧 즉 | 折 꺾을 절, 천천히 할 제 |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