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合之衆 (오합지중)

烏合之衆(오합지중)

규칙도 통일성도 없이 모여든 군중.

烏合之卒 (오합지졸)

烏合之卒 (오합지졸)

아무 규율도 통일도 없이 몰려다니는 무리


三國志·吳志·陳泰傳

“艾等以爲王經精卒破衄於西,賊衆大盛,乘勝之兵既不可當,而將軍以烏合之卒,繼敗軍之後,將士失氣,隴右傾蕩”

烏鳥私情 (오조사정)

烏鳥私情(오조사정)

烏 까마귀 오 | 鳥 새 조 | 私 사사 사 | 情 뜻 정 |

까마귀가 새끼 적에 어미가 길러 준 은혜(恩惠)를 갚는 사사(私事)로운 애정(愛情)이라는 뜻으로, 자식(子息)이 부모(父母)에게 효성(孝誠)을 다하려는 마음을 이르는 말


진(晋)나라 사람 이밀(李密)이 쓴 '진정표(陳情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실려있다. 이 글은 조모 유씨의 병세가 위독하여 이밀이 부득이 관직을 사양하게 됨을 황제께 고하는 글이다.

저는 조모가 안계셨더라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며, 조모께서는 제가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금년 44세이고, 조모 유씨는 96세이니, 제가 폐하게 충성을 다할 날은 길고 조모 유씨에게 은혜를 보답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어미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조모가 돌아가시는 날 까지만 봉양하게 해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

이밀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하씨가 개가하자,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며, 효심이 두터워서 할머니의 병 간호를 하고자 황제가 내린 관직을 물리쳤다.

五日京兆 (오일경조)

五日京兆(오일경조)

五日京兆[wǔrìjīngzhào]

五 다섯 오 | 日 날 일, 해 일 | 京 서울 경 | 兆 조 조, 조짐 조 |

닷새 동안의 경조윤(京兆尹)이라는 뜻으로, 오래 계속(繼續)되지 못한 관직(官職), 또는 그런 일


한서(漢書) 장창전(張敞傳)에 실린 이야기다.

한(漢)나라 선제(宣帝)때, 장창(張敞)은 수도 장안(長安)의 부윤(府尹), 즉 경조윤(京兆尹)을 지냈는데, 중랑장(中郞將) 양운과 막역한 사이였다. 양운은 청렴하고, 총명하고 재능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모함을 받아 면직되었고, 나중에는 대역무도의 죄로 사형에 처해졌다. 조정의 대신들은 양운과 막역한 사이인 장창의 벼슬도 박탈하여야 마땅하다고 상주하였으나, 장창의 재능을 아끼는 선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창의 수하에 서순(絮舜)이라는 부하가 있었다. 그는 도적 잡는 적포연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부 대신들이 장창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장창이 곧 파면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건을 조사하라는 장창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귀가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충고하자 서순은 "나는 경조윤을 위하여 할만큼 했소이다. 지금 경조윤은 남은 임기가 길어야 닷새일 것이니 어찌 사건을 다시 수사할 수 있겠소[吾爲是公盡力多矣, 今五日京兆耳, 安能復案事]"라고 말했다.

장창이 이 말을 듣고 부하들을 시켜 서순을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마침 12월이 며칠 남지 않은 때였는데, 당시 한나라의 형법은 매년 12월에 사형을 집행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형리가 밤낮으로 서순의 사건을 조사하여 사형을 판결하고 즉시 집행하였다. 장창은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서순에게 "닷새 동안의 경조윤이 과연 어떠하냐? 12월도 이미 끝나려 하는데, 너는 더 살 수 있을 것 같으냐[五日京兆竟何如? 冬月已盡, 延命乎?]"라고 말하고는 처형하였다.

장창은 이 일로 서순의 가족들에게 원한을 사서 결국 경조윤에서 물러났다가 나중에 다시 등용되었다.

여기서 유래하여 오일경조는 재임 기간이 매우 짧은 관직이나 그러한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또 임기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관직을 떠나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출전

한서·장창전(漢書·張敞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百日天下(백일천하) | 三日天下(삼일천하) |


吴市吹箫 (오시취소, Wúshìchuīxiāo)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吴市吹箫(Wúshìchuīxiāo)

吴 나라 이름 오 | 市 시장 시 | 吹 불 취 | 箫 퉁소 소 |


(여비가 떨어져)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구걸하다.


(춘추(春秋) 시대의 명장 오자서(伍子胥)가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초(楚)나라에서 오(吳)나라로 도망하여) 오나라 저잣거리에서 피리를 불어 먹을 것을 구걸하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掘墓鞭屍(굴묘편시) | 心腹之患(심복지환) | 日暮途遠(일모도원) |


史記, 사기, 史記:伍子胥列傳, 사기:오자서열전, 伍子胥, 오자서

吳越同舟 (오월동주, WúYuètóngzhōu)

吳越同舟(오월동주)

吴越同舟(WúYuètóngzhōu)

사이가 나쁜 吳(오)나라와 越(월)나라가 한배에 타다. 서로 敵意(적의)를 품은 사람이 한자리나 같은 처지에 있음을 가리키는 말.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서로 협력하게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吳牛喘月 (오우천월)

吳牛喘月(오우천월)

吳 나라이름 오, 성씨 오, 큰소리칠 화 | 牛 소 우 | 喘 숨찰 천 | 月 달 월 |

더운 오나라의 소는 달만 보고도 해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숨을 헐떡거린다는 데서 나온 말.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晋)의 2대 황제인 혜제 때 사마염(司馬炎)의 상서령(尙書令)으로 만분(滿奮)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제 때에는 전부터 발명되었던 유리를 창문에 이용하고 있었으나, 유리는 당시 보석처럼 귀중한 물건이어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만분이 무제와 같이 앉아 있는데 마침 북쪽 창이 훤히 비치는 유리병풍으로 둘러처져 있었다. 원래 기질이 약해 조금만 바람을 쐬도 감기에 자주 걸려 바람을 두려워했던 만분은, 틈이 없어 바람이 새지 않는데도 난색을 표했다. 왕이 이를 보고 웃자 만분은 말했다.

“남쪽 오(吳)나라의 물소들은 더위를 매우 싫어하여, 여름이 되면 물속에 들어가 놀거나 나무 그늘에서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입니다. 어쩌다 밤에 밝은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태양인줄 알고 곧 숨을 헐떡이게 됩니다. 저는 마치 남쪽의 소가 달만 보아도 헐떡이는 것과 같습니다[臣猶吳牛 見月而喘].”

평생 유리창을 본 적이 없는 그가 휑하니 뚫린 북쪽창을 보고 겁을 먹는 것을 보고 내막을 아는 왕이 그것을 보고 웃자, 황공해진 만분이 왕에게 자신을 오나라의 소에게 비유한 것이다.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가 있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편(言語編)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懲羹吹虀(징갱취제) | 傷弓之鳥(상궁지조) | 傷弓之鳥(상국지조) | 驚弓之鳥(경궁지조) |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란다 (한국속담) |


중요도·활용도

중요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