巢毁卵破 (소훼난파)

巢毁卵破(소훼난파)

巢毁卵破[cháohuǐluǎnpò]

巢 새집 소 | 毁 헐 훼 | 卵 알 난(란) | 破 깨뜨릴 파, 무너질 피 |

새집이 부서지면 알도 깨진다는 뜻으로, 국가(國家)나 사회(社會) 또는 조직(組織)이나 집단(集團)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被害)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


후한서(後漢書) 정공순(鄭孔荀)열전의 이야기다.

동한(東漢)말기, 공자의 20세손인 공융(孔融)은 한나라 헌제(獻帝) 밑에서 벼슬을 지냈다. 공융은 일찍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조조(曹操)의 야심을 간파하고 그를 멀리하였다. 때문에 조조는 공융에게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었다. 유비와 손권을 공격하려는 조조의 계획을 반대했던 공융은, 그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던 한 대부의 모략으로 조조에게 체포되었다.

공융의 7세 된 딸과 9세 된 아들은, 아버지가 잡혀 가던 순간 묵묵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도망하라고 했지만, 공융의 딸은 매우 침착하게 '새집이 부서졌는데 알이 어찌 깨지지 않겠습니까[安有巢毁而卵不破乎]'라고 말했다. 공융의 딸은 조조에게 붙잡혀 와서도 죽은 뒤에 혼령이나마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형의 집행을 기다렸다.

巢毁卵破 이란 조직이나 집단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들도 피해를 입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후한서(後漢書) 정공순(鄭孔荀)열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鸡飞蛋打[jīfēidàndǎ] 닭은 날아가고 달걀도 깨지다. 양쪽으로 다 망치다 |

반의어·상대어

完好无损[wánhǎowúsǔn] 완전하고 손상이 없다. |

小貪大失 (소탐대실)

小貪大失(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내어 큰 것을 잃음.

to covet a little but lose a lot; to seek small gains but incur big losses


贪小失大(tānxiǎoshīdà)

小積大成 (소적대성)

小積大成(소적대성)

小 적을 소 | 積 쌓을 적 | 大 큰 대 | 成 이룰 성

작은 것이 쌓이고 쌓여서 큰 것으로 됨.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티끌 모아 태산.
¶ 실도랑이 모여 대동강이 된다.

少壯不努力老大徒傷悲 (소장불노력노대도상비)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 부질없이 슬퍼질 따름이다

A lazy youth, lousy age.


출전

심약(沈約) 장가행(長歌行) |


관련 한자어

참조어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소장불노력 노대도상비)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상심과 슬픔뿐 어쩔 도리 없다네. [심약(沈約) 장가행(長歌行)] |

吏情更覺滄洲遠 老大徒悲未拂衣(이정갱각창주원 노대도비미불의) 벼슬하는 뜻이 신선이 사는 창주와 멀어짐을 새삼 깨닫나니, 늙어서 훌훌 털고 일어서지 못함을 못내 설워하노라. [두보(杜甫) 곡강대주(曲江對酒)] |

旣壯不努力 白首而無知(기장불노력 백수이무지) 젊어서 노력하지 않았더니, 백발 되어서는 아는 것이 없도다. [변계량(卞季良) 감흥(感興)]


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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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人昭昭 我獨昏昏 (속인소소아독혼혼)

속인소소 아독혼혼 (俗人昭昭 我獨昏昏)

세상 사람들 모두 똑똑한데 나만 홀로 어리석다. 노자의 도덕경 20장에 나오는 말.


http://nowgnoy3.blogspot.com/2011/05/blog-post_15.html

宋襄之仁 (송양지인)

宋襄之仁(송양지인)

송나라 양공(襄公)의 어짊이란 말로 쓸데없는 인정이나 필요없는 동정을 비유하여 쓴다.

率獸食人 (솔수식인)

率獸食人(솔수식인)

率 거느릴 솔 | 獸 짐승 수 | 食 먹을 식 | 人 사람 인 |

率獸食人이란 폭정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편의 이야기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이 칼로 죽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양혜왕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점이 없다고 하자, 맹자는 말을 계속하였다.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이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도 사람들은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면[不免於率獸而食人] 백성의 부모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束手無策 (속수무책, shùshǒuwúcè)

束手無策(속수무책)

束手无策(shùshǒuwúcè)

어찌할 방도가 없음.

be at one’s wits end

孫龐鬪智 (손방투지, sūnpángdòuzhì)

孫龐鬪智(손방투지)

孙庞斗智(sūn páng dòu zhì)


孫 손자 손 | 龐 어지러울 방 | 鬪 싸울 투 | 智 지혜 지 |


'손빈(孫矉)과 방연(龐涓)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손빈과 방연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손빈과 방연은 귀곡자(鬼谷子)의 문하에서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魏)나라 혜왕(慧王)에게 기용되어 부근의 약소 국가들을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인 손빈은 그 재능이 방연보다 한 수 위였다. 혜왕도 손빈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므로,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그를 초빙하도록 하였다.

방연은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밀통한다고 모함하였다. 손빈은 슬개골을 잘리는 형벌을 당하고, 얼굴에는 죄수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새겨졌다. 얼마 뒤 손빈은 위나라를 방문한 제나라 사신들에게 구출되어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의 대장 전기(田忌)는 위왕(威王)에게 손빈을 천거하였다.

354년에 위나라가 조(趙)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위왕은 전기와 손빈을 각각 대장과 군사(軍師)로 삼아 군대를 파견하였다. 손빈은 조나라를 공격하는 데 병력을 투입하여 방비가 허술해진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공격하였다. 그리고는 방연이 조나라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위위구조(圍魏救趙:위나라를 포위하여 조나라를 구하다)'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341년에 위나라는 한(韓)나라를 침공하였다. 제나라 선왕(宣王)은 한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전기와 손빈을 파견하였다. 손빈은 이번에도 한나라를 구하러 가지 않고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나라가 대군을 보냈을 때 제나라 군대는 이미 물러간 뒤였다. 방연이 제나라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살펴보니 병사들이 솥에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이 족히 10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에는 솥의 숫자가 5만 명으로 줄어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2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방연은 제나라 병사들이 탈영하여 줄어든 것이라 믿고, 이 틈에 제나라를 섬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마릉(馬陵)에 이르러 방연이 병사들을 독려하여 진군하는데,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방연이 살펴보니 거기에는 "방연이 이 나무 아래서 죽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방연은 즉시 후퇴하려 하였으나 사방에서 제나라 군대가 공격해 왔다. 제나라 군대의 솥 숫자가 줄어든 것은 방연이 경계심을 풀고 공격해 오도록 유도한 손빈의 책략이었던 것이다. 방연은 퇴로가 끊기자 자결하였다.

이 고사는 《사기》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손방투지는 재능이 비슷한 사람이 계책을 써서 기량을 겨루거나,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원수가 되어 생사를 다투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출전]
史記(사기):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관련 한자

참조어

圍魏救趙(위위구조) |


손빈, 방연, 사기, 사기:손자오기열전

孫矉, 龐涓, 史記, 史記:孫子吳起列傳

笑裏藏刀 (소리장도, xiàolǐcángdāo)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里藏刀(xiàolǐcángdāo)

笑 웃을 소 | 裏 속 리 | 藏 감출 장 | 刀 칼 도 |


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웃음 속에 칼을 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다. '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라는 뜻으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상냥하게 대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뜻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병법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여 안심시킨 뒤에 허를 찔러 공격하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위나라의 조조는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형주를 치려고 하였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하면서 위나라의 번성을 치도록 하였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육구에 주둔한 오나라의 여몽(呂蒙)은 관우가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하여 병이 든 것처럼 속여 물러갔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무명의 육손(陸遜)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육구에 부임하여 관우의 무용을 칭송하는 겸손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관우는 노련한 여몽은 경계하였지만 젊고 무명인 육손에 대해서는 애송이라 여기고, 형주 병력의 태반을 거두어 번성을 공격하는 데 투입하였다. 여몽은 형주의 병력이 취약한 틈을 타서 공격하여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함락시켰다. 관우는 여몽과 육손의 소리장도 계책에 넘어간 것이다.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겉으로는 상냥하게 남을 위하는 척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당나라 고종 때 중서시랑을 지낸 이의부(李義府)이다. 그는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마음 속은 각박하고 간사하여 음험한 계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의부의 웃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였다(故時人言義府笑中有刀). 이 고사는 《구당서(舊唐書)》의 〈이의부전〉에 실려 있다. 당나라 현종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고사에서 유래된 구밀복검(口蜜腹劍)과 같은 의미이다.

소리장도의 또 다른 예는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이다.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련 한자

유사어

口蜜腹劍(구밀복검) | 包藏禍心(포장화심) |

참조어

臥薪嘗膽(와신상담) | 西施嚬目(서시빈목) |


36계, 삼십육계, 삼십육계:적전계, 병법

三十六計, 三十六計:敵戰計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少 적을 소, 젊을 소 | 年 해 년(연), 아첨할 녕(영) | 易 쉬울 이, 바꿀 역 | 老 늙을 로(노) | 學 배울 학, 가르칠 교, 고지새 할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成 이룰 성 |

소년(少年)은 늙기 쉬우나 학문(學問)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말


송(宋)나라 대유학자 주자(朱子)의 《권학문(勸學文)》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이다.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學問)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 학난성)] 순간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 불가경)]


출전

주자(朱子)의 주문공전집(朱文公文集)

蕭規曹隨 (소규조수)

蕭規曹隨(소규조수)

蕭 쓸쓸할 소, 맑은대쑥 소 | 規 법 규 | 曹 무리 조, 성씨 조 | 隨 따를 수, 게으를 타 |

'소하(蕭何:?∼BC 193)가 제정한 법규를 조참(曹參:?∼BC 190)이 따른다'라는 뜻으로, 예전부터 사람들이 쓰던 제도(制度)를 그대로 따르거나 이어 나가는 것을 이르는 말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나라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재위 BC 202∼BC 195)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한신(韓信:?∼BC 196), 장량(張良:?∼BC 168), 조참과 함께 한나라의 개국공신으로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을 세웠으며,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秦)나라의 수도 셴양(咸陽)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楊雄:BC 53∼AD 18)이 지은 《법언(法言)》 연건편(淵騫篇)에는 "소하가 만들어 정한 법규를 조참이 그대로 따랐다[蕭也規 曹也隨]"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전

법언(法言)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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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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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送舊迎新 (송구영신, sòngjiùyíngxīn)

送舊迎新 (송구영신)

送 보낼 송 | 舊 예 구, 옛 구 | 迎 맞을 영 | 新 새 신

送旧迎新 (sòngjiùyíngxīn)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으로, ①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 ②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함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나온 말로 관가에서 구관(舊官)을 보내고 신관(新官)을 맞이 했던 데서 유래(由來)


유의어

送迎(송영) |


절기

昭君落雁 (소군낙안)

昭君落雁(소군낙안)

zhāo jūn luò yàn
ciu1 gwan1 lok6 ngaan6

Wang Zhaojun entice birds falling

乘勝長驅 (승승장구)

乘勝長驅(승승장구)

乘 탈 승 | 勝 이길 승 | 長 길 장, 어른 장 | 驅 몰 구 |

싸움에서 이긴 기세(氣勢)를 타고 계속(繼續) 적을 몰아침

make a long drive taking advantage of victory, press hard on the heels of enemy, seize[avail oneself of] an opportunity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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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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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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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歲寒松柏 (세한송백)

歲寒松柏(세한송백)

歲 해 세 | 寒 찰 한 | 松 소나무 송, 더벅머리 송, 따를 종 | 柏 측백 백 |

추운 계절(季節)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이 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節槪ㆍ節介)를 의미(意味)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歲寒松栢(세한송백) | 雪中松柏(설중송백) | 霜風高節(상풍고절) |

歲寒三友 (세한삼우, suìhánsānyǒu)

歲寒三友(세한삼우)

岁寒三友(suìhánsānyǒu)

歲 해 세 | 寒 찰 한 | 三 석 삼 | 友 벗 우 |


추운 겨울의 세 벗이라는 뜻으로,

①겨울철 관상용(觀賞用)의 세 가지 나무, 곧 소나무ㆍ대나무ㆍ매화(梅花)나무.
pine, bamboo and plum blossom

②퇴폐(頹廢)한 세상(世上)에서 벗으로 삼을 세 가지 것, 곧 산수(山水)ㆍ송죽(松竹)ㆍ금주(琴酒).
mountain and stream, pine and bamboo, lute and wine

③매(梅)ㆍ죽(竹)ㆍ수선(水仙)


위 세가지 중 화제(畵題)나 시제(詩題)로 되어 온 송(松)·죽(竹)·매(梅)를 주로 의미한다. 삼우(三友)라고도 하며, 기개가 있어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친구를 의미한다.

이것을 한 장의 화면에 그린 것을 삼우도(三友圖) 또는 삼청도(三淸圖)라고 하며, 풍설(風雪)이나 엄동의 추위에도 견디고 또 다른 식물에 앞서 꽃을 피우므로, 고결한 절조(節操)를 높이 여겨 화제로 많이 사용된다.

묵송(墨松)은 당대(唐代) 중기의 필굉(畢宏)·위언(韋偃) 등이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묵죽(墨竹)은 약간 늦은 당대 말기부터 오대(五代)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북송(北宋)의 문동(文同)이나 소식(蘇軾:소동파) 등의 문인화가가 그 묘사 형식을 정리하였고, 이후 많은 후계자를 배출하였다.

묵매(墨梅)의 기원도 명확하지는 않으나 북송의 승려화가 중인(仲仁)이 최초의 양식을 완성하여, 남송의 양보지(楊補之)에 의하여 원대(元代) 이후의 묵매 형식이 확립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송·죽·매는 화제가 됨은 물론 시제(詩題)로서도 애호되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松竹梅(송죽매) | 三友(삼우) |

참조어

四君子(사군자) |

善行無轍迹 (선행무철적)

善行無轍迹(선행무철적)

착한 행실은 자국이 없다는 뜻으로 선행은 자연에 좋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말.

先行其言而後從之 (선행기언이후종지)

先行其言 而後從之(선행기언 이후종지)

先 먼저 선 | 行 다닐 행, 항렬 항 | 其 그 기 | 言 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 | 而 말 이을 이,능히 능 | 後 뒤 후, 임금 후 | 從 좇을 종 | 之 갈 지 |

자기가 한 말을 실행하게 되면 남들도 따르게 된다.


출전

논어(論語) 위정(爲政) 13章 |


관련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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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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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下之盟 (성하지맹)

城下之盟(성하지맹)

城下之盟[chéngxiàzhīméng]

城 재 성 | 下 아래 하 | 之 갈 지 | 盟 맹세 맹 |

수도(首都)의 성 밑까지 적군(敵軍)의 공격(攻擊)을 받아 할 수 없이 강화(講和)를 맹세(盟誓)하고 굳게 약속(約束)한다는 뜻으로, 대단히 굴욕적(屈辱的)인 강화(講和)나 항복(降伏)을 이르는 말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 12년조(桓公十二年條)의 이야기.

“그 계책을 따르니 교(絞)의 사람들은 초나라의 인부 30명을 사로잡았다. 이튿날에는 교의 사람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초나라 인부들을 쫓아 산 속으로 달려갔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 북문을 지키고 산 아래에 숨어 있었으므로 교의 사람들은 대패하여 성 아래에서 맹세하고 돌아갔다[從之 絞人獲三十人 明日絞人爭出 驅楚役徒於山中 楚人坐其北門 而覆諸山下 大敗之 爲城下之盟而還].”

춘추시기, 초(楚)나라 군대가 교(絞)나라를 침공하여 교나라 도읍의 남대문에 이르렀다. 교나라 군사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는 몇 차례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장군 굴하(屈瑕)는 무왕(武王)에게 한 가지 계책을 제시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이튿날, 초나라는 수십명의 병사들을 나뭇꾼으로 변장시켜 성곽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하는 척하게 하였다. 교나라의 군인들은 그들을 즉시 잡아와, 득의만만해 하였다. 이튿날, 초나라의 같은 작전에 속아 넘어간 교나라 군사들이 그들을 잡으러 성문을 열고 나오자, 미리 매복해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교나라 도성을 포위하며, 총공격을 해들어왔다. 교나라는 순식간에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도성 아래에서 굴욕적인 맹약을 맺고 초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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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중요도 ★★★

仙風道骨 (선풍도골, xiānfēngdàogǔ)

仙風道骨(선풍도골)

仙风道骨, xiānfēngdàogǔ

1.[도교][성어] 선풍도골.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 남달리 뛰어나고 고아(高雅)한 풍채.

demeanour of a transcendent being; to have divine poise and sage-like features

2.[성어,비유] 범속(凡俗)을 초월한 풍격의 서예(書藝).

蟬蛻蛇解 (선태사해)

蟬蛻蛇解(선태사해)

蟬 매미 선, 날 선, 땅 이름 제 | 蛻 허물 세, 허물 태 | 蛇 긴 뱀 사, 구불구불 갈 이 | 解 풀 해 |

매미가 껍질을 벗고 뱀이 허물을 벗듯 그동안 해오던 것에서 약간의 변화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차례 크게 탈바꿈해야 한다’는 의미

先則制人 (선즉제인)

先則制人(선즉제인)

남보다 먼저 도모하면 능히 남을 앞지를 수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1년에는 글로벌 리스크를 먼저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자고 독려하며 사용


2011년 | 새해 사자성어

禪主云亭 (선주운정)

禪主云亭(선주운정) 禪 선 선 | 主 임금 주, 주인 주 | 云 이를 운, 구름 운 | 亭 정자 정 | 운(云)과 정(亭)은 천자(天子)를 봉선(封禪)하고 제사(祭祀)하는 곳이니, 운정(云亭)은 태산(泰山)에 있음 [출전] 千字文(천자문)

雪中送炭 (설중송탄)

雪中送炭(설중송탄)

雪中送炭[xuězhōngsòngtàn]

雪 눈 설 | 中 가운데 중 | 送 보낼 송 | 炭 숯 탄 |

눈 속에 있는 사람에게 땔감을 보내준다는 뜻으로, 급(急)히 필요할 때 필요한 도움을 줌을 이르는 말


송사(宋史) 태종기(太宗紀)의 이야기.

북송(北宋) 초, 토지 겸병을 둘러싼 귀족들의 분란이 깊어지자, 일반 백성들의 삶은 몹시 궁핍해졌다.

서기 993년, 즉 북송 태종(太宗) 조광의(趙光義) 순화(淳化) 4년 봄, 빈곤을 참지 못한 농민 왕소파(王小波)와 이순(李順) 등은 많은 농민들을 이끌고 사천(四川)에서 봉기하였다.

그 해 겨울, 여러 날 동안 눈이 내리고 날씨 또한 매우 추웠다. 태종인 조광의(趙光義)는 왕소파 이순 등의 농민 봉기에 두려움을 느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다시 봉기가 일어날까 염려되어, 사람을 시켜 몇몇 외롭고 늙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돈과 쌀과 땔감을 보냈다[雨雪大寒, 遣中使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민심을 수습하려 생각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아부 잘하는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이 일을 역사에 기록하게 하였다.

二月己未朔,日有食之。壬戌,召賜京城高年帛,百歲者一人加賜塗金帶。是日,雨雪,大寒,再遣中使賜孤老貧窮人千錢、米炭。


출전

송사(宋史) 권5 태종본기(太宗本紀)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雪里送炭[xuělǐsòngtàn, 설리송탄] 다른 사람이 급할 때 도움을 주다 |

반의어·상대어

落井下石 [luòjǐngxiàshí, 낙정하석] 남의 어려움을 틈타 해를 가하다 | 乘人之危 [chéngrénzhīwēi, 승인지위] 남의 위급한 상황을 틈타 남을 해치다 |


중요도·활용도

石田耕牛 (석전경우)

石田耕牛(석전경우)

石 돌 석 | 田 밭 전 | 耕 밭 갈 경 | 牛 소 우 |

척박한 자갈밭을 갈고 있는 우직한 소를 뜻하는 말로 황해도(黃海道) 사람의 근면(勤勉)하고 인내심(忍耐心)이 강(强)한 성격(性格)을 평한 말


관련 한자어

참조어

石田耕牛(석전경우) | 泥田鬪狗(이전투구) |

書自書我自我 (서자서아자아)

書自書我自我(서자서아자아)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곧 글을 읽되 마음은 딴 데 있다는 말.

成人不自在 (성인불자재)

成人不自在(성인불자재)

成人不自在[chéngrénbúzìzai]

成 이룰 성 | 人 사람 인 | 不 아닐 불 | 自 스스로 자 | 在 있을 재 |

성공하려면 안일(安逸)에 빠지지 말고 반드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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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成人不自在 自在不成人(성인불자재 자재불성인)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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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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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人無常心 (성인무상심)

聖人無常心(성인무상심)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성인은 변하지않는 절대적인 마음이 없이 백성(百姓)의 마음을 그 마음으로 삼는다.
- 도덕경(道德經)

誠意正心 (성의정심)

誠意正心(성의정심)

誠 정성 성 | 意 뜻 의, 기억할 억 | 正 바를 정, 정월 정 | 心 마음 심 |

뜻을 성실(誠實)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짐.

[출전]
大學(대학)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格物致知(격물치지) | 誠意正心(성의정심) | 修身齊家(수신제가) |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

成允成功 (성윤성공)

成允成功(성윤성공)

成 이룰 성 | 允 맏 윤, 진실로 윤, 마을 이름 연 | 功 공 공 |

성실을 다하면 성공이 온다.

[출전]
書經

先憂後樂 (선우후락)

先憂後樂(선우후락)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

중국 북송 범중엄의 ‘악양루기’에 나오는 구절

說往說來 (설왕설래, shuōwǎngshuōlái)

說往說來(설왕설래)

说往说来(shuōwǎngshuōlái)

서로 변론하느라고 옥신각신함.

誠心誠意 (성심성의, chéngxīnchéngyì)

誠心誠意(성심성의)

诚心诚意(chéngxīnchéngyì)

정성스러운 마음과 뜻.

西施嚬目 (서시빈목)

西施嚬目(서시빈목)

西 서녘 서 | 施 베풀 시 | 嚬 눈살 찌푸릴 빈 | 目 눈 목 |

서시(西施)가 가슴을 움켜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흉내낸다는 뜻으로, 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또는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일반적으로 중국 4대 미인이라고 하면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을 꼽는다.

그리고 혹자는 중국 역사상 3대 미인으로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향비(香妃)를 꼽는다. 이 3대 미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들을 탐닉한 오왕, 현종, 건융제 등 세 임금이 한결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월 말엽,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오왕(吳王)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를 바쳤다. 결국 夫差는 句踐에게 敗해 自決하고 만다.(「臥薪嘗膽(와신상담)」「長頸烏喙(장경오훼)」참고).

서시는 가슴앎이로 말미암아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뿌리고 다녔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넔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을 본 그래서 옆집에 살고 있던 추녀(醜女)동시(東施)라고 하는 女人이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西施病心而,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而]

그것을 본 이는 그 동네에서 제일 가는 富者 老人이었다. 老人은 그녀의 추한 模襲에 놀라 그만 문을 걸어 잠근 채 며칠을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富者가 杜門不出하자 이번에는 가난한 옆집 老人이 世上에 무슨 큰일이나 난줄 알고는 처자식을 데리고 딴 동네로 逃亡쳐버리고 말았다.

이 추녀는 미간을 찡그린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만 염두에 두었을 뿐, 찡그림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했다. 즉, 서시는 본래 아름다우므로 자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 고사는 원래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에게 노(魯)나라의 악사장(樂師長)인 사금(師金)이 한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장은 사금의 말을 빌려서 장자(莊子)가 공자의 상고주의(尙古主義)를 '외형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다. 장자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제도나 도덕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춘추시대 말엽의 난세에 태어난 공자(孔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하려 하는 것은 마치 추녀가 서시를 무작정 흉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빈정대어 말한 것이다.

[출전] 莊子 天運篇

故西施病心而矉其里,其里之醜人見而美之,歸亦捧心而矉其里。其里之富人見之,堅閉門而不出;貧人見之,挈妻子而去之走。彼知矉美而不知矉之所以美。惜乎!而夫子其窮哉!

In the same way, when Xi Shi was troubled in mind, she would knit her brows and frown on all in her neighbourhood. An ugly woman of the neighbourhood, seeing and admiring her beauty, went home, and also laying her hands on her heart proceeded to stare and frown on all around her. When the rich people of the village saw her, they shut fast their doors and would not go out; when the poor people saw her, they took their wives and children and ran away from her. The woman knew how to admire the frowning beauty, but she did not know how it was that she, though frowning, was beautiful. Alas! it is indeed all over with your Master!'


관련 한자어

동의어

西施捧心(서시봉심, xī shī pěng xīn) | 西施效嚬(서시효빈, xī shī xiào pín) | 效嚬(효빈, xiào pín) |

서시(西施, Xīshī) 관련 한자어

西施顰目(서시빈목) | 西施矉目(서시빈목) 서시가 눈을 찡그린다는 뜻으로, 함부로 남을 흉내내다가 웃음거리가 됨을 이르는 말 |

西施捧心(서시봉심) 서시(西施)가 가슴을 쓰다듬는다는 뜻으로, 함부로 흉내내다가 웃음거리가 됨을 이르는 말 |

病西施(bìngxīshī) 병든 듯한 자태를 띠는 미인. A sick, beautiful woman (西施: Xishi of China who, according to legend, is sickly but exceptionally beautiful because of her sickliness) |

唐突西施(tángtūxīshī) 추악한 것을 아름다운 것에 비유하여 아름다운 것을 모독함을 이르는 말. |

西施有所醜(서시유소추) | 西施有所丑(서시유소추, xīshīyǒusuǒchǒu) 미인인 서시에게도 추한 데가 있다는 뜻으로, 현인에게도 단점이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

西施沉魚 (서시침어)

西施沉魚(서시침어)

xī shī chén yú
sai1 si1 cam4 jyu4

Xi Shi sinks fish


http://en.wikipedia.org/wiki/Four_Beauties

纖纖玉手 (섬섬옥수, xiānxiānyùshǒu)

纖纖玉手(섬섬옥수)

纤纤玉手(xiānxiān yùshǒu)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攝生 (섭생)

攝生(섭생)

자신의 생을 억누르면 생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善攝生者 以其無死地
선섭생자 이기무사지
섭생을 잘하는 자는 죽음의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 도덕경

成事在天 (성사재천)

成事在天(성사재천)

成事在天[chéngshìzàitiān]

일이 되고 안 됨은 오로지 천운(天運)에 달렸다는 말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謀事在人成事在天(모사재인성사재천) | 謀事在人(모사재인) | 成事在天(성사재천) |

雪上加霜 (설상가상, xuěshàngjiāshuāng)

雪上加霜(설상가상)

雪上加霜(xuěshàngjiāshuāng)

눈 위에 서리가 내리다. 불행한 일이 엎친 데 덮쳐 일어남을 이르는 말.

to add frost to snow—one disaster after another

性相近也習相遠也 (성상근야습상원야)

性相近也 習相遠也 (성상근야 습상원야)

By nature, men are nearly alike; by practice, they get to be wide apart.
- Confucius

사람의 천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으로 서로가 멀어진다.
- 공자


孔子, 공자, Confucius

惜別之情 (석별지정)

惜別之情(석별지정)

이별을 아쉬워하는 인정.


유의어

會者定離(회자정리)


이별

聲東擊西 (성동격서, shēngdōngjīxī)

聲東擊西(성동격서)

声东击西(shēngdōngjīxī)

聲 소리 성 | 東 동녘 동 | 擊 칠 격 | 西 서녘 서 |


三十六計 勝戰計 第六計. 동쪽에 소리내고 서쪽을 친다. 상대편에게 그럴듯한 속임수를 써서 공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to make a feint to the east and attack in the west


원문의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적의 정세판단이 흩어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고여있던 물이 점차 불어나 넘쳐흐르는 상태가 되어 막지 못한다.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길 따름이다.[敵志亂萃,不虞,坤下兌上之象,利其不自主而取之.]"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라는 뜻으로,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상대를 교란시켜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통전(通典)》 병전(兵典)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중국 한(漢)나라의 유방(劉邦:BC 247?∼BC 195)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BC 232∼BC 202)가 서로 싸우던 중 위(魏)나라의 왕 표(豹)가 항우에게 항복하였다. 유방은, 항우와 표가 양쪽에서 쳐들어오는 위험에 처하자 한신(韓信:?∼BC 196)에게 적을 공격하게 하였다.

위나라의 왕인 표는 백직(柏直)을 대장으로 하여 황허강[黃河]의 동쪽 포판(蒲坂)에 진을 치고 한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하였다. 한신은 포판을 쳐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으나, 병사들에게 낮에는 큰 소리로 훈련하도록 하고 밤에는 불을 밝혀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표시를 나타내게 하였다. 백직은 이러한 한나라 군대의 작전을 보고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한신은 비밀리에 한나라 군대를 이끌고 하양에 다다라 뗏목으로 황허강을 건너서 매우 빠르게 전진하여 위나라 왕 표의 후방 본거지(本據地)인 안이[安邑]를 점령하고 표를 사로잡았다.

병법(兵法)의 한 가지로, 한쪽을 공격할 듯하면서 약삭빠르게 상대편을 속여서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다른쪽으로 쳐들어가 적을 무찌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 다른 예로 三國志(正史) 曺操傳(조조전)에 등장하는 예를 살펴보자.

하북의 강자, 원소는 조조를 치기 위해 군사를 몰아 조조의 본거지인 허도(허창)로 향했다. 그리고는 선발대를 황하 건너로 보내 백마를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병력을 이끌고 백마를 구원하러 가고자 했다. 이 때 조조의 병력은 원소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 때 조조의 모사 중 한사람인 순유가 건의한다.

"적은 수가 많으니 우선 분산시키지 않으면 부수기 힘듭니다. 먼저 서쪽의 연진으로 향해서, 황하를 건너 적의 배후로 우회하는 듯한 태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원소는 반드시 서쪽으로 군을 이동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그 틈에 재빨리 백마로 급행해서 불시에 무찔러야 합니다."

조조는 바로 이 '성동격서'의 전략을 택했고, 그 선택은 적중했다. 원소는 급히 군사를 나누어 서쪽으로 보냈고, 조조는 원소의 분할된 군대를 섬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를 하나 살펴보자.

유비가 吳로부터 형주를 얻어 안주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익주를 다스리고 있던 유장은 한중의 장로(오두미교의 교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에 유장은 동족인 유비에게 구원을 청하게 되고, 유비는 방통의 조언을 받아들여 유장을 치고자 마음먹는다.

이후 방통의 계략에 따라 익주의 성들을 하나둘 장악해 나간다. 하지만 방통이 낙봉파에서 죽게 되고, 기세가 꺾인 유비는 제갈량에게 원군을 보내달라 한다. 이에 제갈량은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스스로 나선다. 이때 조운, 장비도 함께 나서게 된다.

기세 좋게 전진해 나가던 장비였으나 巴郡(파군)에서 발이 멈추고 만다. 파군을 지키는 노장 엄안에게 발이 묶여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엄안이 싸움에 임하지 않자 장비는 초조해졌다. 그 때 부하 장수 한 사람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파군을 지나갈 수 있는 샛길을 발견한다. 이에 장비는 그 날 밤으로 바로 군사들을 이끌고 샛길로 지나갈 계획을 세운다.

"오늘 밤 이경에 밥을 지어먹고 삼경에 달이 밝은 틈을 이용하여 영채를 거두고 모두 출발한다. 사람은 입에 함매를 물고 말방울은 모두 떼어낸 뒤 조용히 가야 할 것이다. 내가 직접 앞에서 길을 열 것이니, 너희들은 조용히 따라오도록 하라."

하지만 엄안이 파견한 염탐꾼들이 이 소식을 알고 즉각 엄안에게 보고했다. 엄안은 즉시 병사들에게 싸움에 나설 준비를 시킨다.

밤이 되고, 삼경이 지나 장비는 조용히 군사들을 이끌고 전진했다. 엄안은 장비와 병사들의 이동을 확인한 후 병사들을 움직어 기습을 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큰소리가 나며 한 무리의 군사들이 덮쳐왔다.

"늙은 놈아, 달아나지 말라! 내 너를 만나기를 고대했는데, 마침 잘 만났구나!"

엄안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는데 그 곳에는 앞에 지나갔을 터인 장비가 있었다. 먼저 지나간 장비는 가짜였던 것이다. 샛길로 가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뒤에 대기하고 있다가 엄안이 나오자 공격한 것이다. 장비가 엄안을 잡기 위해 계책을 세운 것이었다. 엄안은 장비에게 붙잡히고 만다.

"너희들은 의리도 없이 우리 주군(유장)을 침략하고 있다! 그러니 斷頭將軍(단두장군 : 머리 잘린 장군)은 있을 지언정 어찌 降將軍(항장군 : 항복한 장군)이 있으리오!"

하지만 엄안은 붙잡히고 나서도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여 장비는 그에게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장비는 엄안의 목숨을 살려주고, 엄안은 장비의 恩義(은의)에 감복하여 항복한다.

이 역시 샛길로 가는 척하면서 적을 꾀어내어 공격하는 '성동격서'의 예라 할 것이다.

여기의 장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이 부분에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재편한 모종강은 총평에 이렇게 쓰고 있다.

"장비는 평생 속시원한 일을 몇 번 했다. 督郵(독우)를 매질하고, 呂布(여포)에게 욕을 하고, 長坂橋(장판교)에서 호통을 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용기는 嚴顔(엄안)을 사로잡은 지혜만 못했다. 또한 엄안을 사로잡은 지혜는 엄안을 살려준 현명함만 못하다."

술 좋아하고, 성격 급하고, 머리 나쁜 모습으로 흔히 묘사되는 장비이지만, 正史(정사)에 의하면 장비는 知勇(지용)를 겸비한 名將(명장)이었다고 한다. 연의에서는 후반부에서나 제갈량에게 감화되어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식으로 간간히 계략을 쓰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장비가 쓴 계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출전

三十六計(삼십육계) 勝戰計(승전계) 第六計(제6계) | 통전(通典) 병전(兵典) |


관련 한자어

참조어

明修棧道 暗渡陳倉(명수잔도 암도진창)

明修栈道 暗渡陈仓 (míngxiūzhàndào, àndùchéncāng)

明 밝을 명 | 修 닦을 수,길 수 | 棧 우리 잔 | 道 길 도 |
暗 어두울 암,햇빛 침침할 암 | 渡 건널 도 | 陳 늘어놓을 진 | 倉 창고 창 |

1. 한군(漢軍)이 겉으로는 잔도를 내는 체하면서 몰래 군사를 되돌려 초군(楚軍)의 진창(陳倉)을 기습하다. 2. 성동격서(聲東擊西)하다. 가상(假象)으로 적을 미혹시켜 목적을 달성하다.

To pretend to advance along one path while secretly going along another; to do one thing under cover of another

調虎離山(조호이산)

调虎离山(diàohǔlíshān)

調 고를 조 | 虎 호랑이 호 | 離 떠날 이 | 山 메 산 |

범을 산으로부터 유인해 내다. 적을 유리한 장소나 진지로부터 유인해 내어 그 허점을 이용하여 공략하다.

先難後獲 (선난후획)

先難後獲(선난후획)

先 먼저 선 | 難 어려울 난, 우거질 나 | 後 뒤 후, 임금 후 | 獲 얻을 획, 실심할 확 |

먼저 어려운 일을 하고, 보상은 그 뒤에 생각한다.

[출전]
論語(논어) 雍也(옹야)

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

Benevolence involves being the first to volunteer for a difficult job and the last to think about rewards and recognition.

善男善女 (선남선녀)

善男善女(선남선녀)

불교에 귀의한 신앙 깊은 사람들, 불신도.

徐娘半老 (서낭반로, Xúniángbànlǎo)

徐娘半老(서낭반로)

徐娘半老(Xúniángbànlǎo)

徐 천천히 할 서 | 娘 아가씨 낭 | 半 반 반 | 老 늙을 로 |


서소패(徐昭佩)처럼 우아하다.


서소패(徐昭佩)처럼 우아하다. 《南史·梁元帝徐妃傳(남사·양원제서비전)》에 나오는 양(梁) 원제(元帝)의 후궁인 서(徐)씨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정다감했었다고 함.

우아한 자태를 지닌 중년 부인. 여전히 풍류가 남아 있는 중년 부인. 조롱의 의미를 내포함.


관련 한자어

동의어

半老徐娘(bànlǎoXúniáng) |


南史(남사):卷12:梁元帝徐妃傳(양원제서비전)

先公後私 (선공후사)

先公後私(선공후사)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은 뒤로 함.

先見之明 (선견지명)

先見之明(선견지명)

앞일을 미리 보아 판단하는 총명.

塞翁之馬 (새옹지마)

塞翁之馬(새옹지마)

세상 모든 것이 變轉無常(변전무상)하여 인생살이도 항시 바뀌므로 예측할 수 없다는 말.

生面不知 (생면부지)

生面不知(생면부지)

한 번도 본일이 없는 사람.

生老病死 (생로병사)

生老病死(생로병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 사람이 받아야 하는 네 가지 고통.

死後藥方文 (사후약방문)

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死 죽을 사 | 後 뒤 후 | 藥 약 약 | 方 모 방 | 文 글월 문 |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짓는다는 뜻으로, 일을 그르친 뒤에 아무리 뉘우쳐야 이미 늦었다는 말

the day after the fair; the doctor after death.


한자어

반의어·상대어

有備無患(유비무환)

참조어

만시지탄(晩時之歎)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 도둑맞고 사립문 고친다.

死灰復燃 (Ash may flame up!)

死灰復燃 (Ash may flame up!)

In the Western Han Dynasty (B.C. 203-24 A.D.) in China, there lived a senior official named Han An Guo who later embroiled himself in a lawsuit and sent to prison.

When Han was in jail, he was constantly affronted by a warder named Tian Jia. One night, Tian insulted Han as usual, but this time, Han could not tolerate anymore, so he said to Tian: "Guess what? Ash may flame up. You`d better watch out!"

"Oh, really? But, you know what? Even the fire `comes` back, I am going to pee on it to make it gone again, haha!" Tian kept humiliating Han.

"Tian Jia, someday, you`ll have to pay the price! You`ll be sorry for what you`ve done to me!" said Han.

"Well, I look forward to seeing you flaming idiot! Haha!" said Tian.

Some time passed, Han was released from jail and got back to his previous position. Having learned about that, Tian was frightened to death and attempted to escape from the country.

Han declared that if Tian did not come back and make an apology to him, he would then kill his whole family. So soon after, Tian appeared and apologized to Han.

"I`m sorry. It`s my fault. Please forgive me!" Tian said to Han.

"I would forgive you if you are now peeing... on the fire, wouldn`t you?"

Translation

死灰復燃(사회부연)

死(사):dying

灰(회):ash

復(부):retrieve

燃(연):flame

死灰復燃 (사회부연)

死灰復燃(사회부연)

死 죽을 사 | 灰 재 회 | 復 다시 부, 회복할 복, 돌아올 복 | 燃 탈 연, 불사를 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이 붙었다는 뜻으로, ①세력(勢力)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勢力)을 잡음 ②혹은 곤경(困境)에 처해 있던 사람이 훌륭하게 됨을 비유(比喩ㆍ譬喩)하는 말


'사그라진 재에 다시 불이 붙었다'라는 뜻으로, 잃었던 권세(權勢)를 다시 찾거나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이 다시 훌륭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싸움에 패하였다가 다시 쳐들어오거나 어떤 일에 실패한 뒤 힘을 쌓아 그 일에 다시 착수한다는 의미의 '권토중래(捲土重來)'와 비슷한 말이다. 사마 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중국 전한시대(前漢時代) 문제(文帝:재위 BC 180∼BC 157)의 둘째 아들인 양(梁)나라 효왕(孝王) 때의 관리 한안국(韓安國:자는 長孺)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법을 어겨서 감옥에 갇혔다. 당시의 옥사쟁이 전갑(田甲)이 한안국을 모욕함으로써 한안국은 "다 타버린 재에서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지 않는가[死灰獨不復燃(然)乎]"라고 하며 잃어버린 권력과 세력을 다시 찾겠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전갑은 "다시 불이 타면 오줌을 싸서 꺼겠다[然卽溺之]"라고 하면서 한안국을 비웃었다. [연(然)은 연(燃)과 통용]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세력을 잃은 사람이 다시 활동하거나 득세(得勢)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사기(史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捲土重來(권토중래)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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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上火下澤 (상화하택)

上火下澤(상화하택)

上 윗 상 | 火 불 화 | 下 아래 하 | 澤 못 택, 풀 석, 전국술역, 별이름 탁

위에는 불, 아래는 못.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5년 올해의 사자성어


2005년 | 올해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山海珍味 (산해진미)

山海珍味(산해진미)

산과 바다에서 나는 물건으로 만든 맛 좋은 음식.

事必歸正 (사필귀정)

事必歸正(사필귀정)

모든 일은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


경계

四通五達 (사통오달)

四通五達(사통오달)

사방으로 막힘 없이 통함.

三尺童子 (삼척동자)

三尺童子(삼척동자)

키가 석 자에 지나지 않는 어린애. 곧, 철모르는 어린애.

社稷之臣 (사직지신)

社稷之臣(사직지신)

사직(왕조)을 지탱할 만한 신하.

四知 (사지)

四知(사지)

四 넉 사 | 知 알 지 |

두 사람만의 사이일지라도 하늘과 땅, 나와 상대편(相對便)이 다 알고 있다는 뜻으로, 비밀(秘密)은 언젠가는 반드시 탄로(綻露)나게 마련임을 이르는 말


後漢(후한)의 楊震(양진)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淸廉潔白(청렴결백)으로 關西公子(관서공자)라는 칭호를 들었다고 한다.

후한(後漢)의 양진(楊震)이 왕밀(王密)을 추천하여 왕밀이 창읍령(昌邑令)이 되었는데, 양진이 동래 태수(東萊太守)로 부임할 때 昌邑(창읍)에서 묵게 되었다. 그러자, 王密(왕밀)이 밤에 찾아와서 10금을 내밀며 뇌물로 바쳤다. 양진은 좋은 말로 타이르며 거절했다.

“나는 당신을 정직한 사람으로 믿어 왔는데, 당신은 나를 이렇게 대한단 말인가.”

왕밀은 말했다.

“지금은 밤중이라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자 양진이 나무랐다.

“아무도 모르다니,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아는데[天知地知子知我知] 어째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단 말인가.”

여기에서 사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四知 란 天知地知子知我知를 가리키는 말이며, 세상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음을 뜻한다. 四知 와 비슷한 서양식 표현으로는 영어의 'Walls have ears'라는 속담을 들 수 있다.


출전

십팔사략(十八史略) 양진전(楊震傳)


관련 속담

Walls have ears.


관련 한시

應過數粒食 得近四知金(응과수립식 득근사지금)
두어 술 밥이 내 분수에 응당 과분하나니, 어찌 넷이나 알고 있는 돈을 가까이 하리오.

- 두보(杜甫) 풍질주중복침서회정호남친우36운(風疾舟中伏枕書懷呈湖南親友三十六韻)

所寶惟金 楊震四知之說(소보유금 양진사지지설)
값진 것이 오직 금이로되 양진은 사지의 설을 말했네.

- 무명씨(無名氏) 기욕개동유현자절지부(嗜欲皆同惟賢者節之賦)

山重水復 (산중수복)

山重水復(산중수복)

山 뫼 산 | 重 무거울 중, 아이 동 | 水 물 수 | 復 회복할 복, 다시 부 |

갈 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난제가 가득한 형국

蛇足 (사족)

蛇足(사족)

뱀의 발. 뱀을 그리고 발을 그려 넣다. 있어도 쓸모없는 것 또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공연스레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畵蛇添足(화사첨족)이라고도 한다.

事齊事楚 (사제사초)

事齊事楚(사제사초)

제(齊)나라도 섬기고 초(楚)나라도 섬긴다라는 뜻으로, 양쪽의 중간에서 난처한 경우를 이르는 말.


맹자(孟子) '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로 양쪽 사이에서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지도 못하여 난감한 상황을 말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등(滕)나라는 면적이 매우 작았으나, 등나라 근처에 있는 제나라와 초나라는 큰 나라였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위협을 받은 등나라는 제나라와 친밀하게 지낼 수도 없고 초나라와 가까이하기도 어려웠다. 제나라와 초나라 가운데 한쪽과 친하게 지내면 서로 트집을 잡았기 때문에 등나라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딱한 처지였다.

전국시대의 맹자가 등나라의 왕 문공(文公)을 찾아왔을 때, 문공은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제나라와 초나라의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 우리 등나라는 제나라와 초나라 중 어느 나라를 섬겨야 합니까?[滕 小國也 間於齊楚 事齊乎 事楚乎]."

출전
맹자(孟子):양혜왕장구편(梁惠王章句篇)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間於齊楚(간어제초) | 鯨戰蝦死(경전하사) | 事齊事楚(사제사초) |

山戰水戰 (산전수전)

山戰水戰(산전수전)

세상 일에 경험이 많음.

桑田碧海 (상전벽해)

桑田碧海(상전벽해)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됨. 곧 세상사가 몰라볼 정도로 덧없이 바뀜을 뜻하는 말이다.

山紫水明 (산자수명)

山紫水明(산자수명)

산천의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는 말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sānrénxíngbìyǒuwǒshī)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师(sānrénxíng, bìyǒuwǒshī)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行 갈 행 | 必 반드시 필 | 有 있을 유 | 我 나 아 | 師 스승 사 |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필유아사는 좋은 것은 좇고 나쁜 것은 고치니 좋은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나쁜 것도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의 글을 보더라도 공자 자신도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나면서부터 저절로 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게 되었을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원문 해석도 반드시 어디를 갈 때만이 아니라 행동할 때도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며, 하찮은 것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의 삼인성시호(三人成市虎)와 대조를 이루는 고사성어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孔子穿珠(공자천주) | 不恥下問(불치하문) |


대조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논어,논어:술이편

論語,論語:述而篇

三益之友 (삼익지우, sānyìzhīyǒu)

三益之友(삼익지우)

三益之友(sān yì zhī yǒu)

三 석 삼│ 益 더할 익, 넘칠 일│ 之 갈 지│ 友 벗 우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部類)의 벗으로서, 정직(正直)한 사람과 성실(誠實)한 사람과 견문(見聞)이 넓은 사람을 이름


유래

논어(論語)


Tag

관계│벗

事人如天 (사인여천)

事人如天(사인여천)

동학사상(東學思想)으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같이 떠받들라는 말.

三人成市虎 (삼인성시호, sānrénchéngshìhǔ)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三人成市虎(sān rén chéng shì hǔ)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市 시장 시 | 虎 범 호 |


세 명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곧이 믿게 된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똑같이 하면 믿게 된다는 말.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과 《전국책(戰國策)》의 〈위책 혜왕(魏策 惠王)〉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위(魏)나라 혜왕 때 일어난 일이다. 위나라는 외교 관례상 조(趙)나라에 인질로 태자와 그의 수행원을 보내야만 하였다. 태자의 수행원으로 중신 방총(龐蔥)이 선발되었다. 방총은 조나라의 도읍 한단으로 떠나기 전에 왕을 알현하고 왕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첫 번째는 한 사람이,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연이어 말하더라도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세 번째로 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면 믿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방총이 “시장에는 분명히 호랑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이 연이어 똑같은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夫市之無虎明矣 然而三人言而成虎].”라고 하였다. 방총은 자신이 조나라로 떠난 이후 자신을 비방하는 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니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였다. 왕은 어떤 중상이든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로 떠나자마자 방총을 비방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몇 년 후 인질로 간 태자는 풀려났으나 왕의 의심을 받은 방총은 귀국하지 못한 신세가 되었다. 방총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왕에게 간언한 것이다.

근거 없는 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뜻이며, 유언비어로 진실을 숨기는 것을 비유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동의어로 시유호(市有虎), 시호삼전(市虎三傳),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가 있다. 비슷한 한자 숙어로 증삼살인(曾參殺人:공자의 제자인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인데,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뜻),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뜻으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같은 거짓말을 여러 번 듣게 되면 곧이 듣게 된다는 말) 등이 있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대조어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 |

三人成虎 (삼인성호)

三人成虎(삼인성호)

三 석 삼 | 人 사람 인 | 成 이룰 성 | 虎 범 호 |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라고 말하면서, 그는 자신을 중상모략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청하였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人成市虎(삼인성시호) | 三人成虎(삼인성호) | 시유호(市有虎) | 시호삼전(市虎三傳) |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

유의어

증삼살인(曾參殺人) | 십작목무부전(十斫木無不顚) |

似而非 (사이비)

似而非(사이비)

似而非[sì'érfēi]

似 닮을 사 | 而 말 이을 이, 능히 능 | 非 아닐 비, 비방할 비 |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


《맹자(孟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맹자에게 제자 만장(萬章)이 찾아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향원(鄕原:사이비 군자)을 모두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훌륭한 사람일 터인데 유독 공자만 그를 '덕(德)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무엇인지요."

맹자는 대답했다.

"그를 비난하려고 하여도 비난할 것이 없고, 일반 풍속에 어긋남도 없다. 집에 있으면 성실한 척하고 세상에서는 청렴결백한 것 같아 모두 그를 따르며,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요(堯)와 순(舜)과 같은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 한 것이다."

그래도 만장이 별로 납득하는 것 같지 않자, 맹자는 말을 이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사이비한 것을 미워한다[孔子曰 惡似而非者]'라고 하셨다. '사이비는, 외모는 그럴듯하지만 본질은 전혀 다른, 즉 겉과 속이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며, 선량해 보이지만 실은 질이 좋지 못하다.' 공자가 사이비를 미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만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정의를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러워서이며,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신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미워하는 이유는 아악(雅樂)을 더럽힐까 두려워서이고, 자줏빛을 미워하는 이유는 붉은빛을 어지럽힐까 두려워서이며, 향원(鄕原)을 미워함은 그가 덕을 어지럽힐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원이란 고을 안에서 점잖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머리에 든 학문도 없으면서 있는 척, 어질고 점잖은 척 위장술에 능하여 외견상으로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여 사회적 영향력도 제법이지만, 이들은 자기 결점을 감추는 데 능하다.

이처럼 공자는 인의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하고 처세술에 능한 사이비를 '덕을 해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에 미워한 것이다.

원말은 사시이비(似是而非) 또는 사이비자(似而非者)이다.


출전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似是而非(사시이비) | 似而非者(사이비자) | 同床各夢(동상각몽) | 口有蜜腹有劒(구유밀복유검) | 口蜜腹劍(구밀복검) | 表裏不同(표리부동) | 羊質虎皮(양질호피) | 陽奉陰違(양봉음위) | 羊頭狗肉(양두구육) | 笑中有劍(소중유검) | 笑面虎(소면호) | 笑裏藏刀(소리장도) | 面從腹背(면종복배) | 同床異夢(동상이몽) |

士爲知己者死女爲悅己者容 (사위지기자사여위열기자용)

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

士 선비 사 | 爲 할 위 | 知 알 지 | 己 몸 기 | 者 놈 자 | 死 죽을 사 | 女 여자 여(녀) | 爲 할 위 | 悅 기쁠 열 | 己 몸 기 | 者 놈 자 | 容 얼굴 용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

진(晉)의 예양(豫讓)이 한 말.


출전

史記(사기) 刺客列傳(자객열전) | 史記(사기) 豫讓傳(예양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士爲知己者死(사위지기자사)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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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어

國士報之(국사보지) | 國士遇之國士報之(국사우지국사보지) | 周公握髮(주공악발) 주공이 젖은 머리를 쥐다. 천하의 어진 인재를 잃지 않으려고 아랫사람이라도 정성으로 맞이하는 윗사람의 겸손한 행동 | 지음(知音) 음률을 이해해 주는 친구, 참된 친구 |


중요도·활용도

上屋抽梯 (상옥추제, shàngwūchōutī)

上屋抽梯(상옥추제)

上屋抽梯(shàng wū chōu tī)

上 위 상 | 屋 집 옥 | 抽 뽑을 추 | 梯 사다리 제 |


'지붕 위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워 버린다'라는 말로,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빠뜨리거나 상대방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다는 뜻이다. 삼십육계 가운데 28번째 계책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 倂戰計(병전계) 제28계 지붕 위로 유인한 뒤 사다리를 치우다. 상옥추제계(上屋抽梯計)라고도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 가운데 하나이다. 곧, 적에게 작은 이득을 주어 아군의 깊숙한 곳으로 유인한 뒤에 원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차단함으로써 적을 사지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원문의 풀이글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작은 이익으로 유혹하여 나아가게 하고 퇴로를 차단하여 사지에 빠져들게 한다. 적이 해독을 입는 것은 빠져서는 안되는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假之以便,唆之使前,斷其援應,陷之死地.遇毒,位不當也.]"

중국 고대의 병법서인 《손자(孫子)》의 〈구지(九地)〉편에도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싸울 때에는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게 한 뒤에 사다리를 치우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帥與之期, 如登高而去其梯)"고 하였다.

이 고사성어의 전거가 되는 이야기는 《삼국지》의 〈제갈량전〉 또는 三國志演義 '搏望坡(박망파)'에 실려 있다.

후한(後漢) 시대 말기에 유표(劉表)의 맏아들 유기(劉琦)는 계모의 미움을 받았다. 연의에서는 당시 유비는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초려를 세번 방문해서 제갈량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형주는 유표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음모들로 흉흉한 상태였다. 또한 유비 자신도 유표에게 '장자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에게 미움을 사, 채모에게 죽을뻔 한 일도 있었다.

유표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부탁하고자 유비를 불렀다. 유표는 '자신이 죽고 나면 유비가 형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물러나왔다. 역관에서 쉬고 있는데 유기가 와서 유비에게 말했다.
"계모(채부인)가 용납하지 않아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옵니다. 바라옵건대 숙부께서는 불쌍히 여겨 구해주소서."

채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유종(유표의 작은아들)을 유표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유비와 유기를 제거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비는 유기에게 그것은 집안일이므로 자신이 어찌할 일이 아니라 했다. 유기가 다시 제갈량에게 물었으나 제갈량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유비가 유기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내일 내가 공명에게 답방토록 하겠으니 현질은 이렇게이렇게 하시게. 그러면 계책을 알려줄걸세."

다음날 유비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공명에게 유기를 답방케 했다. 차를 마시고 난 후 유기가 말했다.
"저는 계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구해주시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저는 손님에 불과한데 어찌 남의 집안일에 대해 말할 수 있겠소이까? 혹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그 해가 적지 않을 터이옵니다."

말을 마친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유기가 술이라도 하자며 공명을 만류했다. 술을 마시다가 또 유기가 말했다.
"계모가 나를 용납하지 않으니 제발 선생께서 한 말씀하여 나를 구해주소서."
"그것은 제가 감히 도모할 바가 아니옵니다."
말을 마치자 또 작별하고 가려고 하였다.

"말씀을 안해주시면 그만이지, 어찌 금방 가시려고만 하시옵니까?"
그래서 제갈량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기가 말했다.
"저에게 古書(고서) 한 권이 있는데, 선생께서 한 번 보아주시오."
그래서 제갈량은 유기를 따라 작은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책은 어디에 있소?"
"계모가 용납하지 않아 저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오. 선생은 서운하게도 한 말씀도 해주시지 않습니까?"
제갈량은 일어나 다락을 내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사다리가 치워진 후였다.

유기가 말했다.
"선생은 누설될까 염려하여 제게 방책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소이다. 지금 위로는 하늘도 듣지 못하고 아래로는 땅도 듣지 못하오이다. 선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저의 귀로 들어갈 뿐이니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남의 친족은 이간질할 수 없다고 하였소. 내 어찌 공자를 위해 도모할 수 있겠소?"
"선생은 끝내 저에게 가르쳐주지 않겠소이까? 그렇다면 어차피 저는 죽은 목숨이니 선생 앞에서 죽겠소이다!"
유기는 즉시 칼을 뽑아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제갈량이 말리며 말했다.
"좋은 방책이 있기는 하오."
"어서 가르쳐 주소서."
"공자는 신생과 중이의 일도 못 들으셨사옵니까? 신생은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죽었고, 중이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소. 지금 황조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강하는 지키는 사람이 없는데 공자는 어찌 강하로 가서 지키겠다고 하지 않으시옵니까? 그렇게 하면 화는 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유기는 두 번 절하며 가르쳐 준 것을 고마워했다. 그리고는 사다리를 다시 가져오게 하여 제갈량을 내려가게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상옥추제는 적을 유인하여 사지에 몰아넣거나 상대방을 곤경에 처하게 함으로써 주도권을 잡는 계책을 의미한다. 또한 배수진(背水陣)이나 파부침주(破釜沈舟)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퇴로를 끊음으로써 사력을 다해 싸우게 하는 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때 제갈량이 유비에게 왔고, 박망파에서 初戰(초전)을 치룬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正史(정사)에 따르면 이때는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기 전이고, 박망파 전투는 유비의 전략으로 승리한 것이었다. 박망파에서 승리한 이후에 유비가 제갈량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서 박망파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제갈량의 공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殺身成人 (살신성인)

殺身成人(살신성인)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룬다는 뜻으로, 몸을 바쳐 옳은 도리를 행함.

喪心病狂 (상심병광)

喪心病狂(상심병광)

喪 죽을 상 | 心 마음 심 | 病 병 병 | 狂 미칠 광 |

송사(宋史) 범여규(范如圭)전의 이야기. 송나라 때, 비서성(秘書省)의 관리인 범여규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금(金)나라의 남침에 사람들은 항전을 주장하였으나, 대신(大臣) 진회(秦檜)는 투항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나라의 사신(使臣)이 송나라에 오게 되었는데, 그들을 묵게 할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진회는 그들을 비서성에 묵게 하려고 했다.

범여규는 이 사실을 알고 극력 반대하였다. 범여규는 재상인 조정(趙鼎)에게 "기밀상 중요한 비서성에 어떻게 적국의 사신들을 묵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송나라에 도착한 금나라 사신들은 그 언행이 오만하여 송나라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범여규는 진회에게 글을 써서 그의 편견과 굴욕적 행동을 비난하였다. 이성을 잃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일할 수 있겠소[公不喪心病狂, 奈何爲此]라며.

喪心病狂이란 이성을 잃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三十六計走爲上策 (삼십육계주위상책)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三十六计,走为上策(sānshíliùjì, zǒuwéishàngcè)

三 석 삼 | 十 열 십 | 六 여섯 륙 | 計 꾀 계 | 走 달아날 주 | 爲 할 위 | 上 위 상 | 策 계책 책 |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는 뜻으로, 상황이 불리할 때는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


송(宋) 나라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지은 《자치통감(資治通鑑)》 141권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제(齊)나라 제5대 황제 명제(明帝) 때 일어난 일이다. 명제는 고제(高帝)의 사촌 형제인데, 고제의 증손(제3, 4대 황제)들을 죽이고 황제위를 빼앗았다. 그는 황제에 즉위한 이후 반란과 보복이 두려워 자기를 반대한 형제와 조카 14명을 살해한 것은 물론 자기 주위 사람들마저도 자신에게 반대하면 여지없이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와병 중에도 왕족을 10여 명이나 죽였다. 명제의 가차없는 살해 행위에 회계(會稽) 지방 태수(太守) 왕경칙(王敬則)은 개국 공신인데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먼저 군사를 일으켰다. 왕경칙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건강(建康:지금의 난징)을 향해 진격하였는데, 도중에 명제의 학정(虐政)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가세하여 군사가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왕경칙은 출정한 지 10여 일 만에 건강과 흥성성(興盛城)을 함락하는 등 그의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이때 병석에 누워 있던 명제 대신에 정사를 돌보고 있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건강과 흥성성의 함락 소식을 듣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소보권의 피난 소식을 들은 왕경칙은 “단(檀) 장군의 36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치는 것이 제일 상책이니 너희 부자는 어서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檀公三十六策 走爲上策 計汝父子唯有走耳].”라고 자신 있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당당한 왕경칙도 결국 제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어 참수당하였다.

승산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듯이 상황이 불리하면 일단 후퇴하였다가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지혜로운 군사적인 전술이다. 삼십육계주위상책도 전세가 매우 불리하면 일단 작전상 후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라는 뜻이다. 단 장군은 남북조시대 남조 최초의 왕조인 송(宋) 무제(武帝)의 건국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로, 북위(北魏)와 싸울 때 전세가 불리하면 잘 도망쳤다고 한다. 동의어는 삼십육계주위상계(三十六計走爲上計)이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三十六計走爲上計(삼십육계주위상계) | 三十六計走爲上策(삼십육계주위상책) | 走爲上(주위상) | 走爲上計(주위상계) |
走爲上策(주위상책) |

三歲之習至于八十 (삼세지습지우팔십)

三歲之習至于八十(삼세지습지우팔십)

三 석 삼 | 歲 해 세 | 之 갈 지 | 習 익힐 습 | 至 이를 지, 덜렁대는 모양 질 | 于 어조사 우, 이지러질 휴 | 八 여덟 팔 | 十 열 십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習性(습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 어릴 때부터 버릇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말.

[출전]
이담속찬(耳談續纂)


관련 속담

동의어·유의어

¶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제 버릇 개 못 준다.

四書之經 (사서지경)

四書之經(사서지경)

사서의 경전.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네 가지 책.

上善若水 (상선약수)

上善若水(상선약수)

上 윗 상| 善 착할 선| 若 같을 약, 반야 야 | 水 물 수

Highest virtue is water.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

上善若水,水善利物
최고선은 물과 같다.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 道德經(도덕경)

金石爲開 (금석위개)

金石爲開(금석위개)

金 쇠 금, 성씨 김 | 石 돌 석 | 爲 하 위, 할 위 | 開 열 개, 평평할 견 |

쇠와 돌을 열리게 한다는 뜻으로, 강(强)한 의지(意志)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이 편집한 신서(新序)의 잡사(雜事) 4편의 이야기.

중국 주(周)나라 때 초(楚)나라 사람으로 웅거자(熊渠子)라는 유명한 활의 명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홀로 산속에 걷다가, 앞에 호랑이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풀무더기를 발견하고, 즉각 활을 잡아당겼다. 그는 호랑이가 맞아 죽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호랑이라면 죽기 전에 분명히 몸부림을 쳤을텐데, 이것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게 아닌가. 웅거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의심이 들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였다.

'웅거자는 그의 정성을 보였으므로 단단한 바위를 열 수 있었다[熊渠子見其誠心 而金石爲之開].'

서경잡기(西京雜記)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金石爲開란 마음을 쏟아 강한 의지력으로 화살을 쏘아 목표물을 맞추면 돌까지 뚫는다는 뜻으로, 의지가 강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출전

신서(新序) 잡사편(雜事篇)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射石沒羽(사석몰우) | 사석위호(射石爲虎) | 중석몰시(中石沒矢) | 中石沒鏃(중석몰족) | 中石沒鏃(중석몰촉) |

반의어·상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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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도·활용도

常山蛇勢 (상산사세)

常山蛇勢(상산사세)

常 항상 상 | 山 뫼 산 | 蛇 뱀 사 | 勢 기세 세 |

① 會稽(회계)의 常山(상산)에 率然(솔연)이라는 뱀이 있어서 머리를 건드리면 꼬리가 이르고 꼬리를 건드리면 머리가 오고 허리를 찌르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이른다는, ≪孫子(손자)≫에 나오는 故事(고사)에서 나온 말로, 이 뱀과 같이 左右前後(좌우전후)가 相應(상응)하여 쳐들어올 기회를 주지 않는 陣法(진법)을 이름. ② 文章(문장)의 首尾(수미)가 서로 照應(조응)함을 이름. 앞과 끝이 잘 맺어진 완벽한 문장을 비유한 말.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는 구지편에서 다음과 같은 병법을 이야기하였다. “병사를 쓰는데 아홉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마지막 방법을 사지(死地)라 한다. 이는 주저하지 않고 일어나서 싸우면 반드시 살 길이 있으나, 기가 꺾이어 우물쭈물하면 패하고 마는 필사의 지이다. 진퇴양난의 필사적인 상황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이판사판으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혜롭고 유능한 장군의 용병술은 상산에 사는 솔연(率然)이란 머리가 둘인 큰 뱀처럼 행동해야 한다. 솔연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드는 뱀이다.”

상산사세는 상산에 사는 뱀인 솔연처럼 적이 습격하면 모두가 서로 원호하는 진법을 사용하는 것을 비유한 또는 수미가 잘 호응하는, 완전 무결한 문장을 비유한 말이다. 상산은 산둥성[山東省] 주청현[諸城縣]에서 남쪽으로 약 2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이다.


출전

晉書(진서) | 孫子(손자) |

沙上樓閣 (사상누각)

沙上樓閣(사상누각)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헛된 일의 비유.

四分五裂 (사분오열)

四分五裂(사분오열)

四分五裂 [sìfēnwǔliè]

四 넉 사 | 分 나눌 분, 푼 푼 | 五 다섯 오 | 裂 찢을 열(렬) |

넷으로 나뉘고 다섯으로 쪼개진다는 말로 몇 갈래로 분열한다는 뜻. 천하가 몹시 어지러움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중엽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한창 활약하던 때의 일이다. 소진은 合縱(합종)을 외치며 6개국이 동맹하여 동쪽진출을 노리는 秦(진)에 대항할 것을 설득했다. 장의는 連衡(연횡)을 부르짖으며 여섯나라가 한결같이 진을 따르는 것이 이롭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녔다.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위나라 애왕에게 합종을 포기하고 연횡책을 따를 것을 설득했다. 그때의 辯舌(변설).

『위나라는 사방 천리도 되지 않고 군대도 30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사방이 편평하여 제후들이 사방에서 쳐들어온다해도 요충지가 될 큰 산이 없습니다. 위나라의 지세는 원래가 전쟁터입니다. 위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와 연합하고 동쪽의 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제나라가 위나라의 동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동쪽의 제나라와 연합하고 북쪽의 조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조나라가 북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서쪽의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한나라가 서쪽을 공격할 것이며 남쪽의 초나라와 가까이 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남쪽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것이 사분오열의 길(道)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의는 이어 합종책의 허점을 지적한다. 진나라와 연합해 함께 초나라를 쳐서 절반씩 나누어 갖자고 설득했다. 별수없이 애왕은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출전

전국책(戰國策) |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三分五裂(삼분오열) | 支离破碎[zhīlípòsuì, 지리멸렬] |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 sānfūèrjūnyìzǐ)

三夫二君一子(삼부이군일자)

三夫二君一子(sānfū èrjūn yìzǐ)


三 석 삼 | 夫 지아비 부 | 二 두 이 | 君 임금 군 | 一 하나 일 | 子 아들 자 |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경국지색에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또 있다. 바로 하희(夏姬)이다. 하희는 춘추시대 정나라 목공의 딸로 진(陳)나라 대부 하어숙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자그마치 세 명의 남편과 두 명의 임금과 한 명의 아들 (三夫二君一子 삼부이군일자)을 죽게 만들었으며 한 나라와 두 명의 대신을 멸망시킨 희대의 요부였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도 자기의 친오빠인 정나라 영공과 정을 통했고 또 재상 자공과도 통정하였다. 이 불륜의 삼각관계가 불씨가 되어 마침내 영공은 자공에게 죽음을 당했다. 하희가 진(陳)나라에 시집온 후 아들 하나를 낳고 남편 하어숙은 그만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희는 세 번씩이나 젊어졌다.'는 말이 후세에 전해질 정도로 하희의 미색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그녀의 요염미는 더해졌던 것이었다.

우선 하희는 정나라의 왕이었던 영공과 눈이 맞아 남몰래 정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영공뿐 아니라 공령, 의행보라는 두 사람의 대부도 각기 하희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희의 속옷을 얻어 그것을 조정의 회의 석상에 까지 입고 나와 서로 자랑할 정도였다.

어느날 영공은 하희의 아들이며 대부인 징서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대부를 비아냥댔다.

"징서의 얼굴이 아무래도 자네들을 닮았네 그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왕님을 쏙 빼어 닮았습니다."

그리고는 세 사람은 키득거렸다.

징서는 매우 불쾌해 졌다. 그래서 그는 큰 활을 들고 마굿간 문 옆에 숨어 기다리다가 영공이 돌아갈 때 쏘아 죽이고 말았다. 공령과 의행보는 그대로 초나라로 도망쳤고 영공의 태자도 진(晋)나라로 피했다. 그리하여 징서는 스스로 왕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이듬해 초나라 장왕은 영공 암살의 죄상을 들어 군사를 일으켜 징서를 토벌하고 주살하였으며 정나라를 초나라에 복속시켰다. 이때 장왕은 하희와 환락의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를 소실로 삼고자 했으나 대부 무신이 말렸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녀가 정나라에 있을 때 오빠인 영공과 그리고 재상 자공과 동시에 정을 통해 마침내 영공이 비명횡사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와서도 남편을 요절하게 만들었고 또한 세 사람과 정을 통해 그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 미인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음란하고 상서롭지 못한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

그러자 왕이 단념하였다.

이번에는 장군 자반이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무신이 역시 제지시켰다. 그후 연윤(連尹) 벼슬에 있던 양로가 하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양로 역시 전쟁에 나가 죽었고 그 아들 흑요가 그녀를 범하여 데리고 살게 되었다. 이때 평소에 하희를 탐내왔던 무신이 꾀를 내어 결국 하희를 데리고 진(晋)나라로 도망쳐 같이 살았다. 그러자 장군 자반이 크게 화를 내어 흑요를 죽이고 무신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무신은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오나라로 가서 강력한 군대를 길러 틈만 있으면 초나라를 침략하였다. 드디어 오나라는 진(晋)나라와 힘을 합해 초나라를 공격, 대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초나라 왕은 한쪽 눈을 실명하였고 홧김에 장군 자반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모두가 하희라는 한 요부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관련 한자어

참조어

傾國之色(경국지색) |

邪不犯正 (사불범정)

邪不犯正(사불범정)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駟不及舌 (사불급설)

駟不及舌(사불급설)

駟 사마 사 | 不 아닐 불, 아닐 부 | 及 미칠 급 | 舌 혀 설 |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소문(所聞)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는 경솔한 말을 경계한 대목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위(衛)나라 대부(大夫)인 극자성(棘子成)이 물었다.

"군자는 바탕만 있으면 되었지 문(文)이 왜 필요합니까?"

그러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안타깝습니다. 그대의 말씀은 군자의 말씀입니다.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 미치지 못합니다[夫子之說君子也, 駟不及舌]. 문(文)이 질(質)과 같고 질(質)이 문(文)과 같다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 개나 양의 가죽과 같다는 것입니까?"

위에 나온 質(질)은 소박한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 文(문)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예의범절 등 외면치레를 나타낸다.

송(宋)나라 구양수(歐陽修)의 필설(筆說)에도 한 마디의 말이라도 한번 입을 떠나면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도 쫓기 어렵다[一言旣出, 駟馬難追]라는 대목이 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은 예부터 많이 전해지고 있다.

≪詩經(시경)≫ 大雅(대아) 抑篇(억편)에 나오는, “흰 구슬의 이지러진 것은 오히려 갈 수 있지만 이 말의 이지러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도 그 예이다.

唐(당)나라 명재상 馮道(풍도)는 그의 [舌詩(설시)]에서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다.

駟不及舌(A word, once uttered, is beyond recall) 은 駟馬難追(Four horses can't overtake it -- a spoken word) 라고도 하는데, 이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함을 비유한 표현이다.


출전

논어(論語) 안연(顔淵)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口是禍門(구시화문) | 口禍之門(구화지문) |



嘗糞 (상분, chángfèn)

嘗糞(상분)

尝粪(chángfèn)

嘗 맛볼 상 | 糞 똥 분 |


상분(嘗糞)이란 사람의 대변의 맛을 보아 그 건강한 정도를 살펴보는 의학적 행위를 말한다. 중국의 고사성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극한 효성 또는 도가 지나친 아첨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쓰인다.


고사유래

《서언고사(書言故事)》와 《남사(南史)》의 〈유검루전(庾黔婁傳)〉에 나오는 말이다.

《남사(南史)》의 〈유검루전(庾黔婁傳)〉에 보면, 남북조 시대의 이름난 효자인 유검루(庾黔縷)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차례 관직을 제의받았지만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번번이 사양하였다. 평소 호랑이가 그 효성에 감동하여 그가 다니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잔릉(棧陵)에서 현령(縣令)으로 근무할 때, 아버지의 병환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달려가니, 의원이 변의 맛을 보아야 정확한 진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유검루가 주저 않고 손가락으로 변을 찍어 맛을 보니, 단 맛이 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질을 앓고 심한 설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이후로 매일 북극성에 빌어 아버지의 쾌유를 빌었으나, 하늘의 소리가 이르길, 아비의 수명이 다했으나, 효심을 보아 한달만 수명을 연장케 해주겠다고 하였다. 하늘의 말대로 그의 아버지는 한 달후에 죽었고, 유검루가 3년간 상을 치렀다. 제나라의 화제(和帝)는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높은 벼슬을 내렸지만 끝내 사양하였다. 이 때부터 변을 맛봄[嘗糞]이 지극한 효성을 뜻하게 되었다.

상분은 손가락을 잘라 절명하려는 부모의 입에 피를 넣어 드리는 단지주혈(斷指注血)과 먹을 것이 없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그 고기를 부모님에게 먹였다는 할고(割股)와 함께 효행의 사례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송나라의 호계종이 고사성어를 집대성한 책인 서언고사(書言故事)에 상분이 지나친 아첨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 유래도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당나라에 곽홍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시어사(侍禦史)라는 직위에 근무할 때, 상관인 대부(大夫) 위원충(魏元忠)이 병을 앓고 있었다. 이에 주위 동료들이 모두 함께 병문안을 갔는데, 그 자리에 곽홍패가 없는 것을 보고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곽홍패는 혼자 몰래 문병을 갔다. 곽홍패만은 몰래 혼자 그의 상관을 찾아가 대변을 보여 주라고 말했다. 대변을 가져오자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변의 맛이 달면 병이 중한 것입니다. 다행히 대부님의 것은 쓴 맛이 나니, 곧 쾌유하실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위원충은 그의 이 해괴한 아첨에 오히려 배알이 뒤틀려 버렸다. 후에 병이 나아 조정에 나가자, 위원충은 조정에 가서 이 사실을 폭로해 버렸다. 상관의 변을 맛볼 정도로 아부하는 곽홍패의 처신을 두고 지나친 아부를 말할 때 상분이라고 하며, 그런 무리들을 상분지도(嘗糞之徒)라고 한다.


관련 한자어

斷指注血(단지주혈) | 割股(할고) |


서언고사 | 남사 | 남사:유검루전 | 호계종 | 효도 | 아첨 |

書言故事 | 南史 | 南史:庾黔婁傳 | 南史:卷50:庾黔婁傳 |

上兵伐謀 (상병벌모)

上兵伐謀(상병벌모)

上 윗 상 | 兵 병사 병 | 伐 칠 벌 | 謀 꾀 모 |

교묘한 전략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보았다. “상책의 용병은 적의 계략을 공격하는 것이며, 그 차선은 적의 외교관계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다음 정책은 군대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 아래의 정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上兵伐謀,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여기서 손자는 ‘벌모’ ‘벌교’ ‘벌병’ ‘공성’의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밑의 단계로 내려갈수록 희생만 커지고 성과가 없어진다. 이는 손자가 말한 ‘비전(非戰)’ ‘비공(非攻)’ ‘비구(非久)’의 삼비(三非)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적의 침략 의도를 꺾는 용병법이다.

‘벌모’란 상대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때로는 위협하고 때로는 이간질하고 때로는 유혹하는 등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모략을 의미한다. 사방이 제후국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튼튼한 연맹을 맺는 ‘벌교’ 역시 ‘벌모’ 못지않게 중요하다. ‘벌교’란 다른 제후국들이 아군의 전술에 대응하는 데 급급하게 만들어 이쪽의 틈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군의 외교전술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쟁을 결정하면 성문을 걸어 잠그고 통행증을 폐기하여 적국의 사절이 외교적인 접근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외교가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있듯 승리의 보조수단으로 외교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손자는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벌병(伐兵)을 외교 다음의 대응책으로 삼았고 피해는 크되 효과를 내기는 어려운 공성(攻城)을 최하위에 두었다. 성을 오르는 병사들을 ‘의부(蟻附)’, 즉 개미떼로 비유하면서 무능한 장수가 병사들을 하찮은 미물로 여기고 치르는 무모한 전쟁법이라고 보았다. 손자가 ‘모공’ 편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완전한 승리란 ‘나라를 온전하게(全國)’ 유지하면서 이기는 것이지 ‘나라를 파괴하는(破國)’것은 차선책인 것이다.

최소의 비용, 최대의 효과란 단지 용병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적용되어야 하는 최상의 비책인 셈이다.


출전

孫子(손자) 孫武(손무)


관련 한자어

上兵伐謀(상병벌모) | 其次伐交(기차벌교) | 其次伐兵(기차벌병) | 其下攻城(기하공성) |


참조

上兵[shàngbīng] (군사를 쓰는 데 있어서의) 상책(上策). 상계(上計). 상수(上數).

徙木之信 (사목지신)


徙木之信(사목지신)

徙 옮길 사 | 木 나무 목 | 之 갈 지 | 信 믿을 신 |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인 상앙(商鞅, ?~BC338)의 법령 시행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는 세 길이나 되는 나무를 남문(南門)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十金을 주겠다고 포고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감히 옮기지 않았다. 상앙이 다시 五十金을 내걸자,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어 거짓이 아님을 내보였다. 이렇게 하여 신법을 공포하였는데, 일년후 백성들이 그 법령의 불편한 점을 고하며 도성으로 몰려왔다. 이때 태자(太子)가 그 법을 어겼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상류층 사람들이 범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하였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徙木之信이란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는 것을 뜻하며, 移木之信(이목지신)이라고도 한다.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徙木之信(사목지신) | 移木之信(이목지신) |

四面楚歌 (사면초가)

四面楚歌(사면초가)

사방에서 楚(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말로 궁지에 몰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벌인 5년전쟁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전쟁 초기와는 반대로 형세는 이미 항우에게 아주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항우는 유방에게 강화를 청하여 鴻口(홍구)를 기점으로 천하를 兩分(양분)했다. 홍구의 서쪽은 한나라가 차지하고 동쪽을 초나라가 차지하기로 한 것이다. 강화가 성립되자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돌아갔다.유방도 서쪽으로 돌아가려 하자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진언했다.

『지금이야말로 한나라와 초나라 세력의 優劣(우열)은 분명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리하여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하게 되었다.해하까지 쫓겨온 항우의 군사는 여기에 성벽을 쌓은 다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군량도 거의 바닥이 난데다가 병력마저 반으로 줄어 있었다. 게다가 한나라 군사는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한 상태였다. 그런데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는 것이었다. 항우는 크게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한나라 군사가 이미 초나라를 정복했단 말인가. 초나라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이것은 한나라에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해 항우와 그의 군사들의 戰意(전의)를 잃게 하려고 한 장량의 술책이었다. 여기에서 사면초가란 주변에는 적군뿐이어서 고립상태에 빠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司馬昭之心 (사마소지심, SīmǎZhāozhīxīn)

司馬昭之心(사마소지심)

司马昭之心(SīmǎZhāozhīxīn)

司 맡을 사 | 馬 말 마 | 昭 밝을 소 | 之 갈 지 | 心 마음 심 |


'사마소의 마음'이라는 말로, 권력을 빼앗으려는 야심을 비유하거나 그러한 야심이 빤히 드러나 보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삼국지》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사마소는 위나라의 권신 사마의(司馬懿)의 아들이다. 사마의가 죽은 뒤에 위나라의 실권은 아들 사마사(司馬師)에게 이어졌다. 사마사가 죽은 뒤에 그의 동생인 사마소가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그는 황제인 조모의 권위를 무시하였다.

한번은 조모가 사마소를 진공(晋公)에 봉하고 구석(九錫)을 하사하였으나, 사마소는 이를 비웃으며 받지 않았다. 구석이란 황제가 총애하거나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9가지 은전으로, 거마(車馬)·의복·악기·주호(朱戶)·납폐(納陛)·호분(虎賁)·궁시(弓矢)·도끼·거창을 말한다. 이를 거절한 것은 곧 황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요, 그가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었다.

분노한 조모는 3명의 근신(近臣)들에게 "사마소의 마음은 길을 가는 사람들도 다 안다(司馬昭之心, 路人皆知). 내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사마소를 쳐야겠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근신들 가운데 2명이 즉시 이 사실을 사마소에게 고해 바쳤다. 조모는 위병들을 이끌고 사마소의 거소로 쳐들어갔으나, 결국 사마소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이후 사마소는 조환을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웠고,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은 조환을 몰아낸 뒤 국호를 진(晋)이라 고치고 황제가 되었다. 이 고사는 《삼국지》 〈위서(魏書)〉편에 실려 있다. 여기서 유래하여 사마소지심은 권력 따위를 탈취하려는 음모와 야심이나 음흉한 심보가 다 드러났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관련 한자어

유의어

司马昭之心, 路人皆知(SīmǎZhāozhīxīn, lùrénjiēzhī)
1.사마소의 야심은 길을 가는 사람조차 모두 다 안다.
2.야심이 분명하여 누구나 다 안다. 야심이 뻔히 들여다보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드러난 음모와 야심.


三國志:卷04:程昱傳孫曉附傳 |

山林處士 (산림처사)

山林處士(산림처사)

관직이나 세속을 떠나 산 속에 파묻혀 글이나 읽고 지내는 사람.

似蘭斯馨如松之盛 (사란사형여송지성)

似蘭斯馨如松之盛(사란사형여송지성)

似 닮을 사 | 蘭 난초 란(난) | 斯 이 사, 천할 사 | 馨 꽃다울 형 | 如 같을 여 | 松 솔 송 | 之 갈 지 | 盛 성할 성 |

난초 향기와 비슷하고, 소나무가 다옥한 것과 같다.

≪孝經(효경)≫에는 “효도는 덕의 근본이니 여기에서 교육이 시작된다(夫孝者德之本也 敎之所由生也 부효자덕지본야 교지소유생야)”고 했다. 덕은 난초와 같이 멀리까지 향기를 풍기고, 눈 위에서도 시들지 않는 송백과 같은 무성함이 있다. 꽃은 수수하지만 그윽한 향기가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蘭(난)은 예로부터 君子(군자)의 德化(덕화)에 비겨졌고, 사시사철 늘 푸른 소나무는 군자의 꿋꿋한 절개에 비겨졌다. 그러므로 효자 된 명성은 마치 향기로운 난초와 같이 멀리까지 미치고, 나라를 위한 절개는 松柏(송백)처럼 雪中(설중)에서도 獨也靑靑(독야청청)하다고 한다.

[출전]
千字文(천자문)


관련 한자어

동의어·유의어

似蘭斯馨(사란사형) | 如松之盛(여송지성) |

似蘭斯馨 (사란사형)

似蘭斯馨(사란사형)

似 닮을 사 | 蘭 난초 란(난) | 斯 이 사, 천할 사 | 馨 꽃다울 형 |

난초(蘭草)같이 꽃다우니 군자(君子)의 지조(志操)를 비유(比喩ㆍ譬喩)한 것임

[출전]
千字文(천자문)

森羅萬象 (삼라만상)

森羅萬象(삼라만상)

우주 사이의 수많은 현상.

四端 (사단)

四端(사단)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네 마음.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선왕이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곧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를 하였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를 다스리기는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이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사람이 문득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이 아니며, 향당(鄕黨)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발단이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발단이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발단이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의발단이다.

사람이 이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해치는 자요, 그 임금이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다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오르는 것과 같으니, 만일 확충한다면 사해(四海)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요, 만일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출전] 孟子, 公孫丑 上

事貴作始成功之半 (사귀작시성공지반)

事貴作始 成功之半(사귀작시 성공지반)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한역한 것


참조어

行百里者 半於九十(행백리자 반어구십)

傷弓之鳥 (상궁지조, shānggōngzhīniǎo)

傷弓之鳥(상궁지조)

伤弓之鸟(shānggōngzhīniǎo)


傷 다칠 상 | 弓 활 궁 | 之 갈 지 | 鳥 새 조,땅 이름 작,섬 도 |


활에 놀란 새, 즉 활에 상처(傷處)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으로, ①한번 놀란 사람이 조그만 일에도 겁을 내어 위축(萎縮)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②어떤 일에 봉변(逢變)을 당(當)한 뒤에는 뒷일을 경계(警戒)함을 비유(比喩)하는 말


경궁지조(驚弓之鳥)라고도 한다. '화살에 맞아서 다친 새'라는 뜻으로, 예전에 일어난 일에 놀라서 작고 하찮은 일에도 매우 두려워하여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초(楚)·조(趙)·연(燕)·제(齊)·한(韓)·위(魏) 등 여섯 나라는 합종책으로 최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하려고 공수동맹을 맺었다. 조(趙)나라에서는 위가(魏加)를 초나라에 보내 초나라의 승상(丞相) 춘신군(春申君)과 군사동맹에 대하여 논의하게 하였다. 위가는 협상 중에 초나라의 임무군(臨武君)을 군대를 총지휘할 장군으로 정하였다는 춘신군의 말을 듣고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한 적이 있는 임무군은 늘 진나라를 두려워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위가는 춘신군에게 "위나라에 활을 잘 쏘는 사람이 왕과 함께 산책 길을 걷고 있을 때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보고 화살을 메기지 않고 시위만 당겼는데 맨 뒤에서 날아간 기러기가 놀라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명궁은 '이 기러기는 지난 날 제가 쏜 화살에 맞아 다친 적이 있는 기러기입니다[傷弓之鳥].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맨 뒤에서 겨우 날아가며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고 알아보았습니다. 활의 시위만 당겼는데 그 소리에 놀라 높이 날아가려고 하다가 땅에 떨어졌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진나라와 싸워서 졌던 임무군을 장군으로 임명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소리에 놀라 땅에 떨어진 기러기를 진나라에 패배한 임무군에 비유한 것이다. 화살에 맞아서 상처가 난 새는 구부러진 나무를 보기만 해도 놀란다는 뜻이다.

[유래]
戰國策(전국책) |


관련 한자어

유의어

懲羹吹虀(징갱취제) | 吳牛喘月(오우천월) | 驚弓之鳥(경궁지조) | 惊弓之鸟(jīnggōngzhīniǎo) |



Tag

戰國策(전국책) :
卷十七•楚策四 |

四窮之首 (사궁지수)

四窮之首 (사궁지수)

네 가지 궁한 것의 으뜸인 늙은 홀아비

三顧草廬 (삼고초려, sāngùmáolú)

三顧草廬(삼고초려)

三顾茅庐(sāngùmáolú)


三 석 삼 | 顧 돌아볼 고 | 草 풀 초 | 廬 농막집 려,창 자루 로 |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軍師)로 초빙(招聘)한 데서 유래(由來)한 말로, ①임금의 두터운 사랑을 입다라는 뜻 ②인재(人材)를 맞기 위(爲)해 참을성 있게 힘씀.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허송하며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 같은 용맹무쌍한 장수를 두고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가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유비는 유표의 부하인 채모의 계략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우연히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만나게 된다. 사마휘에게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복룡인 제갈 량을 맞으러 관우·장비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찾아갔으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고, 그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제갈 량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초가집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고 있었으나, 유비의 정성에 감복하여 그를 돕기로 결심하였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은 사이)라며 기뻐하였다. 훗날 제갈량은 《출사표(出師表)》에서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하여 "비천한 신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라고 감사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삼고지례는 유비가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제갈 량을 감복시켜 자신을 돕게 하였던 것처럼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하여 진심으로 예를 갖추어 맞이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줄여서 삼고(三顧)라고도 하고, 삼고지례(三顧之禮) 또는 초려삼고(草廬三顧)라고도 한다.

[출전]
三國志(Sānguózhì):蜀志(촉지):諸葛亮傳(제갈량전) |


관련 한자어

동의어

三顧(삼고) | 草廬三顧(초려삼고) | 三顧之禮(삼고지례) |

참조어

猶魚有水(유어유수) | 魚水親(어수친) | 魚水之親(어수지친) | 水魚之親(수어지친) | 魚水之交(어수지교) | 水魚之交(수어지교) | 水魚(수어) | 君臣水魚(군신수어) |


삼국지, 삼국지:촉지, 삼국지:촉지:제갈량전

三國志, 三國志:蜀志, 三國志:蜀志:諸葛亮傳

四顧無親 (사고무친)

四顧無親(사고무친)

의지할 때가 도무지 없음

死孔明走生仲達 (사공명주생중달)

死孔明走生仲達(사공명주생중달)

삼국지에서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도망가게 했다는 내용에서 유래.

三個星霜 (삼개성상)

三個星霜(삼개성상)

3년 동안의 세월.

喪家之狗 (상가지구)

喪家之狗(상가지구)

喪 잃을 상, 죽을 상 | 家 집 가 | 之 갈 지, -의 지 | 狗 개 구 |

초상집(初喪-)의 개라는 뜻으로, ①별 대접(待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②여위고 지칠 대로 지친 수척(瘦瘠)한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한 말 ③또는 궁상(窮狀)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얻어먹을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의 초라한 모습을 이야기한 대목이 있다.

공자(孔子)는 노(魯)나라에서 선정을 베풀었으나, 왕족인 삼환씨(三桓氏)와 의견이 맞지 않아 노나라를 떠났다. 그 후 10여 년 간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진(陳), 채(蔡)등 여러 나라를 돌며 이상을 실현해 보려 했다.

공자(孔子)가 정나라에 갔을 때에 제자들과 길이 어긋나 혼자 성의 동문(東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정나라 사람이, 때마침 스승을 찾아 헤매던 제자들을 만나자,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말했다.

"동문에 웬 사람이 서 있는데, 그 이마가 요(堯)임금을 닮았고, 목이 고도(皐陶)와 같으며, 그 어깨는 자산(子産)을 닮아 모든 것이 옛 성현으로 존경받던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허리 밑으로는 우(禹)임금에 미치지 못하기가 세 치요, 뜻을 이루지 못해 몹시 피로해 보이고, 지친 모습은 마치 초상집의 개[若喪家之狗] 같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동문으로 급히 달려가 공자(孔子)를 만났다. 자공이 정나라 사람이 한 말을 스승에게 그대로 전하자, 공자(孔子)는 빙그레 웃으면서 "모습에 대한 형용은 꼭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초상집 개라는 말은 과연 맞춘 말이다. 과연 그대로다. [而似喪家之狗, 然哉然哉]"하고 말했다.

초상집에서 주인이 돌보지 못하므로 굶주려 초라해진 개와 같다는 의미(意味)임.


출전

사기(史記)